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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종교재판

     
희대의 종교재판
교단에서 제명된 연유
                                               立敎 162(1999)年 9月 13日 교통 배석수

교단 제 99-27호

귀하가 국제종교심판소 등에 제기한 "창세기 사용정지 가처분 신청"은 사회적으로 많은 물의를 일으킬 우려가 있기에 소를 취하한 근거를 이 달 30일까지 제출하여 주기 바라며 이에 불응시 포교소 등록을 말소시켜 교단지를 통해 공표하겠음을 교단연석회의(1999년 9월 13일)에서 결의 하였으므로 이에 통보합니다.

서울 중앙우체국 내용증명

천리교한국교단
교통 배석수

희대의 종교재판

위의 공문이 도착한 것은 그해 9월 21일이었다. 매월 3일간씩 3년 3개월간의 6좌근행을 부부가 작정하여 실천하고 있을 때, 위의 공문이 도착하였는데 큰 충격을 받았다.

"창세기 사용정지 가처분 신청"이란 다름아닌 카톨릭교황이 선언한 [창세기는 오류이며 진화론이 논리적으로 옳다"는 발언(종교신문 참조)에 대해, 의의를 제기한 것이었으며, 환생과 진화를 주재하시는 으뜸인 가르침에 비쳐, 이는 창세기가 으뜸인 理에 항복한 선언과 같은 중차대한 발언이라 사료되었기 때문이다.

창세기가 오류라면 폐지시키는 것이 타당한 것은 그리스도교의 좌장격인 카톨릭 교황(眞柱에 상당한 지위)의 선언에 의함이지 내가 만든 억지 논리가 아니었던 것이며, 마땅히 오야사마의 가르침을 전언해야 할 용재로서 당연한 논리였던 것이다. 우리의 오후데사키(친필)가 거짓이라고 신바시라(眞柱)께서 공식 선언했다고 가정해 본다면 그 진위의 파장은 카톨릭에서는 당연히 감수해야 되는 것이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에 대한 논리를 증빙하여 1999년 6월 29일 국제종교심판소를 비롯한 전세계 각지 각처에 번역된 으뜸인 리와 함께 620여통의 파발마를 통해 "창세기는 오류"이므로 더 이상 인류를 혹세무민하지 않도록 정지시키는 것이 마땅하다는 취지의 [종교빅뱅프로젝트]를 보냈던 것이며 이를 계기로 [아! 오야사마]라는 책을 쓰게 되었던 것이다.

문화공보부장관의 복장금지 요청에 호응하는 교정에 반발하여 헌재소를 찾았고, 천리교의 엘리트 그룹인 번역위와 전국 교회장이 힘과 지혜를 모아 만장일치로 가결한 신악가 개역본을 폐계시켰으며, 원남성교회장(?)을 교체시킨 괘심죄에다, 얄밉게도 최상위 폴더인 전도청 부속으로 소속되어 심기를 언찮게 하고 있으며, 봉사단을 조직하여 전국에 호를 날리었고, 주제도 모르고 출판사를 차려 천리교가 일본 종교인줄 들통나겠끔, 교단에서 언급조차 않는 오야사마라는 이름의 책까지 짓는 등 눈에 가시가 돋혀 그냥 두고는 도저히 눈이 시려 볼 수가 없자 카톨릭과의 관계와 사회적 물의를 빙자로 말소 제명시키는 희대의 종교 재판을 강행하였던 것이다.

특히 이 길의 구도에 의하면 소속은 곧 생명이다. 신앙의 빛을 볼 수 없도록 대교회장의 힘까지 빌려 영구제적시켜 버렸는데도 버러지같이 빌붙어서 온갖 만행(?)을 저지르는 발칙한 넘을 그냥 둔다는 것이 천년왕국을 꿈꾸다 쫓겨난 체면을 더욱 구기는지라 합법을 가장해서 목숨같은 소속을날려 버리기로 결심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재판에 가까운 결의를 도출하려면 본인의 의사를 청취하는 등의 합법을 준수해야겠지만 머뭇거리다간 소정의 목적을 이룰 수 없을지모른다는 불안감에 우를 범하므로써 종단의 체통을 구기게 된 것이라 생각된다.

이 사건의 결심 재판은 교단의 계획대로 진행되어, 결국 그해 10월 1일 경남 진해에서 있은 교회본부 용재 지방강습회 날, 교단의 항명을 받고 양간지목에 계신 전도청장(永尾隆德)님이 교단의 힘과 명분에 밀려, 총무원장과 함께 天馬포교소를 교단과 전도청소속에서 박탈하게 되었음을 공식 선언하게 됨으로써 天馬의 소속은 박탈되었던 것이다.

이 길은, 소속이 곧 생명이요 길이지 않는가. 소속없는 천리교 포교소는 존재할 수 없을진데 그 소속을 박탈하여 영원히 천리교에서 매장시키려 정관에도 없는 교단연석회의를 만들어 퇴출시킨 그들이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 알고나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전도청장께 교단이냐 天馬냐의 선택을 강요해 오는데 누가 나같은 피래미를 염려할 자 어디 있겠는가. 드디어 그들의 속셈대로 교단과 전도청에서 제적시켜 버린 것이다. 그나마 진더기 근성이라도 있었기에 이 고귀한 신앙을 전하고 있는거지 하마트면 천에 999명이라면 벌써 끝나 버렸을 신앙이지 않겠는가.

새 천년을 앞둔 마지막 대제인 1999년 10월 23일에는 소속도 없이 지바를 노숙참배했으며, 돌아오는 10월 27일 그날 한국의 태풍을 피해 지바에서 공부하고 있는 원남성교회장이었던 최효석에게 하극상이 가해졌던 것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원남성교회 역사에 참여하지도 않은 D교회측이, 교회역사를 주도한 K교회의 뜻을 묻지도 않은 상태에서, 교회가 버거워 운영하기 힘들다며 전도청으로 오소나이할 뜻을 대교회장께 전하게 되자, 대교회장은 곧 표통령께 원남성교회를 전도청으로 써 주십사며 오소나이를 결정해 버렸던 것이다. 이는 역사주체인 K교회의 생각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무렵 마주일어날 징조로써 원남성교회장이었던 최효석은 교회 경리와 열애에 빠졌고, 역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강행하는 마찰속에, '저런 교회장을 받들려고 허**를 쫓아낸 것이 후회스럽다'는 발언이 오갔는데, 최효석을 퇴출시키기로 결심한 것을 눈치챈 D교회장이 빅딜을 제안했었던 것이다.

그것이 곧 뼈빠지게 역사한 교회를 아무런 의논조차없이 오소나이되게 한 D교회장이 대교회장께 실언으로 그 큰 덩치의 교회가 전도청으로 쓰게된 잘못(?)에 대한 보상으로, K교회에서 교회장을 쫓아내려는 것을 눈치채고 빅딜을 제안하여 합의를 본 것이다.

쉽게말하면 교회를 오소나이하는 것은 대교회장에 의해 이미 결정된 사항으로 그 접수작업이 그의 완결되었으나 역사주체교회에서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으며 이를 설득하는 것을 큰 과제로 남겨놓고 있을 무렵, 교회장을 쫓아내려는 것을 눈치채고 그것을 책임지고 맡겼다는 빅딜을 제안하므로써 원만한 합의를 보았으며, 쫓아낼 책임을 D교회의 정우식씨가 맡겨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위에 말한 1999년 10월 27일 八木 숙소에서 퇴출을 강요받게 되었으며 이에 최회장은 '선생님은 30년이상 이 길을 걸었으므로 나같은 아무것도 모르는 교회장을 도와주면 되지 않겠느냐'며 눈물까지 흘렀다는 것이다.

초대의 의지에 의해 설립된 교회이며 초대를 팔아 말대 만대의 양식으로 삼고 있는 이 길에서 왜 이런 일이 가능해 졌을까. 초대의 10주기에 참배한 것을 만행이라 규정할 정도로 질서와 순서는 파괴되었으며 무적함대같았던 교회는 서로의 이권으로 나눠가지게 된 현실이 도래했으며 초대의 친자가 우여곡절을 겪어 교회장에 옹립되고서도 파란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결국 내쫓게 될 수밖에 없었을까.

최효석은 한국의 잠잘날 없는 태풍을 피해 지바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학생근행만 보아도 되지만 아버지의 뜻에 따라 훌륭한 교회장이 되기위해 본부 아침근행을 한차례도 빠짐없이 보아왔다고 한다. 즐거운 근행은 창인의 발성에 있다며 뒷산에 올라 크게 목소리를 다듬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날이후로 충격을 받아 나날이 괴로워하며 눈물로 지새웠는데, 그때부터 조석근행은 물론 수업 등, 모든 것에 의욕을 잃고 참담해 하며 울다가 웃는 등의 정신적 교란상태를 보이다 드디어 결심하기를 '내가 교회장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 역원 모두의 뜻이라면 그 뜻에 따를 수밖에 없다. 억지로 하겠다고 한다고 하여 받들 것도 아니라는데, 미미적꺼리는 것은 사나이다운 처신이 아니라며 홀연히 사직서를 써고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한다.

혹자는 교회장이 하기 싫어 도망갔다며 퍼붇는 욕을 들은 적이 있다. 이 모든 것이 1999년 9월 11일 B교구에서 모의 되었다는 걸 알 게 되었는데, 교단연석회의에 참석했던 어느 교회장의 부인으로부터 그 전말을 전해듣게 되었던 것이다. 아울려 B교구에서 W교회의 역원회가 긴급 개최되어 교회장의 생모를 쫓아내는 결의까지 강행하였다는 것을 전해 들었는데, 사서삼경 다 뒤져봐도 삼원전을 통털어도 인간의 리에는 없는 가혹한 처사가 이뤄지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었으나, 그 누구하나 정의로운 가슴을 가진자가 없다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현실이 아닌가 생각된다.

각설하고, 이런 부도덕한 교권을 휘두르며 전현직 교통이 합세하고 교위원 33명이 만장일치로 제명할 것을 가결하였다는 것은 무얼 의미한다고 생각는가. 정의가 존재하고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 일이라 여겨 '단노'라는 교리는 접어두고, 불의에 굴하지 않으려 일전을 불사할 각오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하게 되었는데 정부의 중재와 민형사의 압박으로 드디어 그들은 굴복 참패하게 되었으나 진실은 아니었던 것이다.

아울러 교회본부 심판회에, 본 天馬布敎所 말소·제명 건을 회부하게 되었던 것이다. 나의 신념에 잘못이 있다면 교회본부에 기록된 天馬를, 모든 자료에서도 제명시켜 달라는 요지였었는데, 다행히 본부특사까지 파견, 중재에 나서게 되어 교통(배석수)의 공식사과를 받고(1999.12.15일 부산 S호텔) 소를 취하(1999.12.18일)하게 되었던 것이다.

참으로 대망의 밀레니엄 2000년을 앞둔 시점이 아니었다면, 그냥두지 않으려 했다. 입에서 단내가 나든 종단이 꺼꾸로 가든 끝장을 보려했으나 세계가 다시 웅비하는 밀레니엄부터 새로운 각오로 임하기 위해 관용을 베풀었던 것이었으나 그들은 기회를 엿보다 전도청시대를 맞아 더욱 교묘한 정책으로 스스로의 길을 망치는 수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교통의 사과를 받는 장소에서, 본 건에 대한 전말과 사과를 교단지를 통해 공식 사죄하겠다는 약속과 관계자들과의 허심탄회한 회포를 풀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겠다는 약속으로 마무리됐으나 아직 그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더욱 올가미를 쪼여오는 악수를 계속 두고 있을 뿐이다.

 

 立敎 166(2003)年 9月 28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