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立敎 159(1996)年 1月 1日 
                                                                                                                   
神風을 예고한 편지

저의 이 편지가 오히려 교회장님께 심려를 끼치지 않기를 기원하면서 긍정적으로 읽어주시리라 믿겠습니다.

제가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 등에 엎혀 K교회를 찾은 것이 벌써 42년이 되었으니 이 길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이 꽤나 오래 되었다고나 할까요.

그러나 같은 뿌리에서 길을 가면서도 너무나 큰 생각의 차이 때문에 흑과 백의 위치에 있는 자신이 매우 부끄럽다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순사빽 하나 없는 우리 집안에 유일하게 성공하신 분이신데 같은 길을 가는 조카가 끌어내린다는 소문은 정말 가슴 아픈 현실이라 생각됩니다. 교단의 화룡점정에 계시는 분과 대립하는 모습으로 비쳐진 건 좋지 않은 모양새라 항시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당신을 도와줄 도구로 신님이 저를 선택했다는 사실에 한편으로는 매우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정말 신기하게도 원남성교회의 사정과 맞물려 들어와 사정의 중심에서 증인으로 활동하게 된 것은 결코 후회되지 않을 뿐 아니라 신님이 소용에 써 역할을 맡겨 주신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신님의 필연적인 스케줄에 의해 현실로 나타날 날이 머잖았다는 것을 예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남아 있어 보았자 전주 최씨들 좋은 일 시키느니 나가는 것이 좋다'고 건의하신 수홍교회장과 중동교회장 등과 의기 투합하여 갈라져 나오시게 된 후, 그 속뜻을 알고는 있었지만 최효석군의 누나 대입 자금 협조 요청이 있었을 때였습니다. 지난 초대교회장님의 10주기 때 상주인 후계자의 참배를 여쭈러 갔다가 교회장님께 매수 당했던, 생질인 김*성씨와 그런저런 얘기들을 나누게 되었던 것이 계기가 되어 오늘에 이르른 것입니다.

당시 오른팔 왼팔격인 최동명 선생과 수홍교회장님이 '최효석이가 마목'이라고 주장하는 얘기를 듣고는 초대와 후계자를 위한 길을 가야겠다고 생각을 굳혔던 것이랍니다.

아마 초대 최재한 선생의 장례식날, 조사(弔辭)를 읽게 된 덕분에 알 게 된 후계자를 위해 사명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은 저에게 내려진 신의 특명같은 사명감이라 생각해오다 마목이라는 결정적인 선언을 듣고 결심을 앞당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저 아이에게 오야사마의 가르침과, 아버지와 기무라 선생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일러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명칭의 리가 다른 손에 넘어가게 된다는 것은, 초대로서는 천추의 한이 될 뿐 아니라 나도 공범이라는 사실인데,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 보니 피창이 터질 일이라 생각되었습니다.

김*범선생의 '초대할배가 최효석이 줄 마음이었다면 최정자나 최기대한테 리를 물러주지 않고 하필이면 허태규에게 리를 주었겠느냐'는 말들 속에 목적과 수단의 차이일 뿐 엄청난 사실(?)이 숨겨져 있었으며 '세상이 복잡한데 후계자가 누가될지 어떻게 아느냐' '대세가 이미 기울었다'는 등의 K·S 교회장님의 말씀들을 유추해 보면, 혈로써 후계가 상례화 된 이 길의 구도에서, 초대의 으뜸하루에 의해 설립된 명칭의 리와 유지를 망각한다는 것은, 리에 죽으며 리를 세우는 구극의 종교로서의 가치조차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라는 건 저의 신앙이 굴곡된 탓일까요.

정상적인 천리교의 가르침을 통해 영혼말대·자손만대로 리가 이어가는, 리를 지키는 생각이 잘못된 것인지, 선천리 후인정의 가르침을 통해, 불멸의 명칭의 리를 있게한 초대의 뜻을 거짓과 아첨으로부터 지키려는 순순한 신앙이 잘못된 것인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울 즈음, 초대 대교회장과 현재 대교회장은 성이 달라도 명칭의 리만 번성한다는 거짓이 진실을 잠식, 엄연한 리를 부수고 얕은 꾀가 깊은 뜻을 병들 게 했던 지난날의 혼탁하고 무질서 했던 역사는 정통성을 수호한 후계자의 리가 제자리를 잡아갈 즈음, 역사 저 멀리 사라져야 할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었답니다.

이러한 괴리가 판을 치는 현실에 하마터면 천리교든 만리교든 안했을지도 모를 후계자의 사정을 생각해보면 정말 아찔한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런데 지난달 11월 15일 군복무를 마친 후계자의 새로운 각오를 듣고, 전도청과 터전에 함께 참배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지난 12월 14일 전도청 월차제에 참배를 했었는데, 역시 전도청의 리가 크다는 걸 그날 참배이후 절실히 느꼈습니다. 오지바 참배 이후엔 더 욱 크게 느끼겠지만 말입니다.

참배를 마치고 나오면서 후계자는 '여기까지 성인 시켜준 은혜는 고맙다. 잘 생각해 보니 소장님의 임무는 끝난 것 같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듯이 천리교의 생리로 보아 현회장을 무시하는 신앙은 있을 수 없다. 다달이 현 회장님께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월차제를 참배하고 상급교회와 터전에도 다녀야겠는데 오히려 소장님의 이미지로 보아 악역이라 도움될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되므로 앞으로는 일체 관여치 말고 손을 떼 달라. 그리고 현회장님이 고마운 것은 교회를 맡아 팔아먹는 사람도 더러 있다는데 그나마 아버지의 명칭의 리를 보전하신 분이지 않는가. 초대교회장님의 유지를 받는 것이 내 생명 열 개보다 귀중하다는 걸 깨달은 후론 조석근행을 한시간 이상씩 보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역시 왕대밭에 왕대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이게 모두 신님이 하시는 일임을 깨닫고 감격했었답니다.

이제 저의 임무는 끝났습니다. 후계자는 제가 깨닫고 알고 있는 사실보다도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혼은 보통의 혼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그동안 교회장님께 본의 아니게 대립한 점 널리 이해 바랍니다.

제가 거꾸로가도 천리교를 좀 해보니까 으뜸하루를 잊으면 안된다는 걸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으뜸하루는 어디일까. 당연히 아버지였으며 K교회였습니다.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라 생각했습니다. K교회 초대교회장님이 임종에 앞서 하신 말씀 가운데에는 '산하가 상급에 올라가 크 가지고 다시 명령해 올 때가 가장 괴로웠다'는 얘기를 하셨다는 것을 듣고 '과연 그렇겠구나'하고 생각되었답니다.

당신께 꼭 진언하고 싶은 것은 당신도 살고 초대교회장님도 함께 사는 길을 택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입니다. 그의 아들이 올까바 제사조차 팽개칠 정도라면 그 흑막은 뻔하지 않습니까. 이제 그 무서운 아들이 다달이, 아니 언젠가는 나날이, 아니 죽어 귀신이 되어도 따라다닐 때는, 그 마목(?)을 그냥두실(?) 분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원남성교회 낙성봉고제날 후계자를 못오게 하려고 저를 납치하여 4시간 동안 감금한 사위들이 뭐라고 한줄 아십니까. 왜 자기 아버지가 이룬 교회에 참배할 수 없고 10주년에 참배한 것조차 만행이라 규정해야 되는가요. 모본에는 반대하는 자도 내 자녀라고 했는데, 세계를 다스리는 길 속에서 원남성교회를 다스릴 리가 정녕 그것밖에 없었던가요.

요즘 저는 노태우씨가 미숙아란 느낌을 갖습니다. 정도(正道)로 대통령의 길을 갔더라면 자손만대가 빛날 자리를 당대로써 끝내는 천박함을 보고 우리의 사정에다 대입해 보았습니다. 신자 역원이라고 해도, 진실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대세에 휩쓸려 쏠려가고 있는 무리들이지 않습니까. 神風이 방향을 바꾸면 전부 돌아설 빈껍데기 같은 자들 외에 진실한 자 한사람이라도 있습니까. 그 많은 사람중에 이 편지를 의논할 사람 어디 한사람이라도 있긴 있습니까?

지금이라도 모든 것을 저에게 뒤집어 씌워 주십시요. 그 자식(저)이 미워서 그랬지 초대의 유지를 잊으려고 생각한 적은 추호도 없었다구요. 그런 마음으로 저를 꾸짖어 주시면 달 게 받겠습니다. 왜 건방지게 내가 있는데 지가 후계자를 안고 돌고, 강습을 보내고, 독필로 사람을 갉아 내렸냐고 하셔도 제가 모든 것을 잘못한 것이 되는 겁니다.

이제 시순이 왔습니다. 교조 110년제는 예사로운 시순이 아닙니다. 이 시순을 놓치면 큰일입니다. 제발 모든 것을 저에게 뒤집어 씌워 주십시요. 희생 플라이로 팀을 살려 보겠다는 애초의 뜻대로, 이 한 몸 묵사발이 되어도 원남성교회의 정통성이 확보되고, 이 길의 가치가 제 빛을 발한다면 여한이 없겠습니다.

요즘 저는 인도한 분의 은혜를, 자손만대를 걸쳐 갚아도 모자란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의 잘못이 초대 교회장님의 유지를 묵살할 만큼의 비중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일개 말단 용재의 잘못을 명분삼아 실리를 취하시면 신의 바람은 방향을 바꿀 것이 명확합니다. 교조 110년제에 부는 바람은 예사로운 바람이 결코 아닐 것임을 미리 예고하는 저의 뜻을 존중해 주시리라 믿겠습니다.

당신! 조카의 모든 것을 걸어 깨우치오니 통촉하시어 우리 집안의 불행과 원남성교회의 불행을 사전에 막으려는 뜻을 충분히 받아 주시어, 후회없는 만남이 이루어지길 진심으로 빌어 봅니다.

당신! 어릴 때 당신이라 부르지 않고 작은 아버지라 즐겨 부른 그 뜻을 아마 모르실 겁니다. 아버지 없는 설움을 그나마 그렇게 불렀으나 돌아온 답은 메아리밖에 없었지요. 결혼할 날짜를 알리려 당신집에 찾아가서 1시간이나 목이메여 울고 돌아온 것을 기억하십니까. 잘 생기고 든든한 당신이, 아버지가 없는 자리를 메워 주시리라 기대했으나 끝내 아무도 오지 않았잖습니까.

중학교 3학년 때, 초등학교 6학년인 유생이와 나를 불러놓고 '너거 둘을 공부시킬 여력이 없다. 누구든 하나만 진학하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가는 학교를 포기하고 불구자 동생을 중학교에 보내게 한 기억이 납니다.

할아버지께서 당신께 수차 하신 말씀 '이 조카들은 다르다. 네 자식과 조금도 구별하게되면, **** 운명이 될거다'는 말씀을 예사롭게 생각하셨습니까. 당신을 전도한 우리 아버지의 은혜가 고작 당신의 짐이요, 천덕꾸러기였지 않습니까.

선택받은 당신의 아들딸과 어떻게 구별없이 대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무리 신앙이라지만, 저희들이 당신교회에서 그들을 떠 받들며, 자손만대에 걸쳐 종노릇을 하며, 오빠라고 부를 수 없다는 거지같은 대접을 단노라는 허울로 받아들여 지겠습니까. 이 길에서 제일 중요하다는 전도오야의 아들이란 사실을 잊으셨습니까.

당신,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뜻, 고성 초대교회장님과 원남성 초대교회장님의 뜻을 지키는 길이 으뜸하루라 생각됩니다. 이제 신풍이 불어닥칠 시순은 이미 정해졌습니다. 오늘의 충언을 간과하여 신풍에 밀려 쫓겨나셔도 저를 원망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아까운 천년왕국을 두고 떠날 수 없다고 하시겠지만 저의 고언을 충언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음을 반드시 후회될 것이라 생각되오니 냉정한 판단있으시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 이 편지는 현 원남성교회장님과 고성교회(직전 교회장, 현교회장, 후계자)에 보내야겠다고 판단되어 4통이 복사 되었습니다. 더 많이 복사되지 않도록 도와주실 것을 믿고 조만간 소식 있으리라 기다리겠습니다. 그 점 널리 양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 이제 저는 공식적으로 원남성교회 후계자님이신 최효석군과 손을 떼겠습니다. 그러나 마음만은 항시 그의 곁에 있을 것입니다. 두분 교회장님께서 후계자님을 도와 주시어 불행한 사태를 막아 주시리라 믿겠습니다.

■ 교조 100년제 때 저의 가족 단참을 막으신 후, 교조 110년제를 맞아 난생 처음 오지바 참배를 결심했습니다. 죽어도 八木大敎會 쎄끌 밑에서 잘 것이라던 후계자는 각오라도 있지만, 저야 어디 반겨줄 곳도 없거니와 부칠 곳도 없는 신앙의 천애 고아가 아닙니까. 이달 25일 출국하여 28일 귀국 예정입니다.

■ 부디 오랜 신앙이 상처받지 않기를 빕니다. 만약 본의를 무시하여 당하게되는 그 어떤 수모라도 원망하지 않으시기를 神風에 실어 보내는 바입니다.

나무 天理王命이시여!

 

立敎 159(1996)年 1月 1日

許 * * 드림

위 편지를 보낸 후담
위 편지 내용 가운데 [당신]이라 표현된 곳의 본래 표현은 촌수를 나타낸 말이다. 이제 인간의 도리 따위와는 절연한지라 임의로 당신이라 표현된 점 읽으시는 분의 혜량을 바라는 바이다.

당시 후계자가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1995년 11월 15일)를 앞두고 있을 무렵인 1995년 10월 15일, 원남성교회 역원이신 이제명 선생을 만나게 되었다. 혼자서 원남성 후계자를 위한 뜻을 위해 각고하는 내가 안타까웠는지, '허선생, 이제 김해는 물샐 틈이 없어요, 개미 한 마리 끼어들 틈이 없는 완벽한 철옹성이오. 저쪽(일본)을 보나 이쪽을 보나 대세는 이미 기울여졌으니 포기하는 게 나을 것 같소. 다만 하나의 길이 있다면, 동삼동에 가서 사감이나 하며 의식주를 해결하려면 몰라도...'라며 충언(?)을 아끼지 않았었다.

그 때 무모하지만, '교조 110제의 신풍이 보이지 않습니까?'라고 답했던 것이다. 당시 이제명 선생은 초대의 유지를 적극지지한 역원의 한사람으로써 내가 후계자와 손뗀다는 사실을 알고, 그래도 뜻이 이뤄지면 허소장의 공이라 말했던 분이다. 공치사를 바란 것은 아니지만 그 분만큼은 그 과정을 소상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여담이지만 당시 그 분이라면 사정의 내막을 충분히 읽고있었기에, 깊은 뜻을 중재할 수 있다고 믿었었는데, 쫄대기 바람에 휘몰려 대의를 잊게 되었지 않았나 생각된다. 바람몰이에 길든 자들 뿐인지라, 전체를 보는 눈을 지닌 자가 한사람도 없었다는 것이 참으로 애석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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立敎 158(1995)年 12月 14日, 전도청 참배를 결행한 후계자는 급속한 신앙 성장을 보이며 직접 모든 사정과 맞부딪히겠다는 각오로 12월 22일 현회장을 면담하고는 앞으로의 결의에 대해 분명히 전언하게 되었으며, 새해 첫날을 발송일자로 한 위의 글이 전달되었으니 일종의 선전포고를 완료한 셈이다.

초대 10주기를 기해 교단과 교회에 철저한 통제를 지시한 덕택으로, 신전 낙성봉고제 때(1994.11.20일)는 부부가 함께 피납되었으며 비자발급에 필요한 서류 협조도 공식 거부되어 터전귀참이 난항이 예상되었으나 다행히 저희 창조문화사의 직원(?)으로 비자를 발급받아 꼭 10년 전에 기획한 시순인 교조 110년를 맞아 드디어 터전귀참을 실행시켰던 것이다.

그를 보낸 다음에 지바참배를 하겠다는 애초의 결심대로 교조 110년제 앞 날인 정월 25일날 망망하고 낯선 터전이라는 곳에 도착하였으나 반겨줄 자 아무도 없는 가운데 오로지 감로대를 향한 염원의 불꽃만은 꺼지지 않았었다.

교조 110년제의 날, 처음 지바에 돌아와서 느낀 바와 오늘 신전강화를 하신 신바시라의 말씀을 들은 느낌에 대해 도유사 기자가 취재하여 천리시보에 보도되기도 했었다. 이단이 돌아와 별석을 받으려하니 중지시키지 않으면 안된다며 비상이 걸렸다는 소식도 들었다. 소정의 목적을 이루고 1월 28일 귀국했다.

귀국 근행을 보고 있으려니 후계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애초의 만나지 않기로 한 약속대로 전화를 받지 않겠다는 거절의사를 전하라며 호통부터 쳤었다. '소장님! 긴급한 이야기라 잠시만 이야기하도록 해 주라'는 전화라며 반드시 본인이 나에게 전해야 된다기에 받았다.

최정옥 누님과 함께 대교회장께 인사 하려 갔더니 [너는 아버지를 봐서 교육은 시키도록 하겠다. 그러나 허소장만은 절대로 八木산하로 신앙하게 할 수 없다.]고 힘주어 강조했다는데 돌아올 때 인사를 갔더니 또 그 점을 재차 강조하셨다는 전화였다. 그리고 그것이 너무 중요한 사안이라 자신이 직접 알리지 않을 수 없음을 통보한다는 것도 잊지 않았다.

대교회에서 제적된 것이다. 이미 소속에서는 제적되었었지만 대교회의 확인 사살이 단행된 셈으로, 신앙의 생명을 잃은 것이다. 솔직히 충격적이었다. 후계자를 구제하게되면 그가 나를 구제해 주리라 믿었던 애초의 생각과는 다르게 냉정한 선언으로 들렸다. 대교회에서 길을 막게되면 길은 없다. 아직까지 단 한번도 소속을 바꾸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대교회장이 후계자를 통해 하늘의 명을 전해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그 말을 전하는 후계자의 음성이 워낙 차갑고 냉랭한지라 일종의 배신감같은 것을 느꼈다.

그렇지 않아도 이제 내가 해야될 임무는 아무것도 없으며, 역원들이 맡아훌륭한 교회장으로 길러내리라는 믿음밖에 없었던터인데 그에 덧붙여 소속에 대한 확인 제적을 대교회장의 특명으로 받은 후계자로부터 직접 듣게되니, 감회가 남달라 잠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느 날엔가 '그래도 소장님 덕택'이었다는 그 말 한마디만은 직접 듣고 싶었던 그 당사자로부터 싸늘한 전언을 듣고보니 새로운 신앙의 길을 가야겠다는 각오가 휘몰아쳐 왔었다.

그래, 하늘이 대교회장과 당사자를 통해서 전달하지 않으면 안되는 중대한 뜻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 후계자는 대망을 이루지 않으면 안된다. 그가 가는 길에 장애가 될 소지가 충분하게 비쳐질 수 있을 법 하다. 떠나지 않고 먼 발치에서 바라만 봐도 리모콘 역할이나 섭정으로 비쳐질 수 있겠다. 元南星이 제 빛을 발휘하게 정리되면 아버지가 입신하였던 교회로 돌아가 다하지 못한 불효를 다하리라 다짐했던 그 모든 것을 삭제 처리 할 수밖에 없는 시순이 도래 하였던 것이다.

진즉부터 희생플라이를 날려 팀을 살리려 했었지 않은가. 나같은 자의 희생으로 초대의 대망이 이뤄진다면 혼쾌히 떠나자. 예감이 적중했을 뿐, 예상된 순서일 뿐이다. 터전에 잉크를 묻히지 않으려 한 뜻을 살리면 된다. 아무렴 다같은 신의 자식인데 나 하나를 도려내는 리법이라면 세계는커녕 고을도 구제될 리 없는 가르침이지는 않으리라는 믿음이었다. 미련없이 하늘의 명에 따를 것을 재촉하고 계심을 느끼고는 미룰 수 없었다. 여건만 된다면 당장이라도 교회본부로 돌아가 담판하고 싶은 충동이 전신을 휘감아 왔었다.

첫째, 후계자 문제는 이제 원남성교회장과 역원들의 몫이다. 내가 곁에 있다는 것은 역원들과 후계교회장간의 간격이 될 수가 있다.

둘째, 원남성교회의 하나와 교단의 통합에 장애가 될 수가 있다.

셋째, 현 교회장간의 문제가 자칫 집안의 골육상쟁이 될 수도 있다

는 등에 대해 신님이 한발 앞서 수호해 주시는 모습이라 깨닫고는, 교회본부에 돌아가 그 매듭을 맺고 돌아오겠다는 결심을 하고, 고성교회장 등께 나의 처신을 의논했던 바 잘 생각했다며 소속을 바꾸는 것에 전적인 동의를 보내왔다. 양심 한켠에 남아 있었던, 아버지와 인연을 맺었던 그 으뜸하루에 대한 불효를 말끔히 씻어내는 것 같아 한결 홀가분했다.

대교회장의 제적(除籍)처리에 대한 문제를 확실히 하지 않아 발생할 문제를 사전에 짚어두기 위해 대교회장과 당시 원남성교회에 재청을 요구했던 바, 공식적으로 八木大敎會와 元南星敎會에서 삭적(削籍)처리되었음이 교회본부에 통보 되었다.

본부 최고 권위자께 면담을 신청 소속문제를 협의한 그해 9월 28일(7년 전 오늘) 교회본부로부터 천리교 한국전도청에 소속되었다는 연락을 받아, 天馬라는 명칭까지 하사받았으며, 그해 10월 별석을 거쳐 익년에 교회장 검정강습 전후기와 포교소등록 天馬를 교회본부에 입적시켰던 것이다.

참으로 신기한 신님의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이 문제는 신님이 활동해 주시지 않는다면 수천억의 돈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된다. 혹자들은 교회본부에서 크나큰 실수(?)를 한 것이라 생각하며 시기질투에 가득찬 왼눈으로 쳐다보고 있지만 그건 하늘의 뜻을 제대로 몰라서 하는 소리임을 언제인가 깨닫게 되리라 믿는다.

나중에 알 게 된 사실이지만 나같은 보잘 것 없는 자가 보낸 글로 인해 본부원회의까지 열렸으며 전적으로 동의해 주는 분위기였음도 듣게 되었다. 그만큼 회생의 모험자 최재한 선생의 그 숭고하고도 위대한 뜻을 교회본부에서도 안타까이 여기고 계셨다는 의미라 생각된다.

동안, 후계자를 가르치면서 한번도 자료를 입수하기 위해 술수를 써본적은 없으나 유지를 담은 공증서같은 것들이 우연 자연으로 입수 되는 등, 신기한 섭리가 함께함을 느꼈었다.

신풍은 강하게 휘몰아쳤다. 그해 2월 22일 원남성 청년지부장 문제에 제동을 건 고성교회에 의해 최효석이 부상하게 되었었다. 초대 10주기 추모제 때, 전주곡에 놀라서 쓰러졌던 그가, 일러드린 신풍예고를 제대로 감지했다면, 몰골 사나운 초라한 퇴장은 없으련만, 천년왕국을 두고 떠나자니 잠이나 제대로 왔을지 모르겠다.

신임교회장 취임을 앞둔 1997년 7월 30일 원남성교회 연성회에서 약 70분간에 걸친 감화에서 허소장 부부에 대한 얘기가 주를 이루는 것을 보고 역원들은, 허소장께 공(功)을 뺐겼다는 위기감에 분통을 샀다고 들었으며 1997년 8월 17일 교회장에 취임하여 1999년 10월 27일 역원특사(?) J모씨에 의해 교회본부에 피신해 있는 숙소에까지 쫓아와, 갖은 협박으로 종용함으로 우여곡절의 24개월을 시한으로 초대의 뜻은 말살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 길이 쫓겨나고 쫓아내는 길이든가. 동삼동에서 쫓겨났다고 크게 외치더니, 또 김해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이윽고 최효석씨 마저 쫓아냈었는데, 앞으로 맡은 교회장인들 또 그 전철을 밟지 말라는 법은 없는 듯 하다.

참으로 진실 하나의 길을 걸어왔다면 쫓아내려 해도 쫓아낼 명분은 존재할 수 없을진데, 초대가 걸으신 길을 거짓으로 위장한 자들에게 그런 큰 명분이 작용할 리 있겠는가. 있다면 아부 아첨으로 칼자루 잡은 자의 왼불알을 쥐고 흔들지 않는 한 신의 리로써는 어림 택도 없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참고로 교조 110년제의 해 1월 1일, 위의 편지를 보낸 후부터, 문제의 전화통화(대교회 제적을 전언)를 제외하고는 교회장에 취임한, 다음해 8월 17일까지는 단 한차례의 만남이나 전화 통화도 없었다. 다만 취임후 1997년 8월 31일 그의 어머니가 교회장에 취임할 수 있도록 도와준 나에게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하였는지 만나자고 하여 '식사나 하라'며, 거금 10만원을 전달받았었다.

그 때, 돈만 달랑 전달하고 오후에 역원회의가 있어 바빠서 떠난다고 하기에 오랜만에 만나 교회장 취임을 축하한다는 이야기라도 하고 싶었는데그럴 시간이 없어 잠시 차를 탄 것이 **에서 김해까지 함께 탑승하여 갔었다.

나와 신임 최효석 교회장이 함께 차를 타고 있는 것을 본 원심교회장이 '허소장이 최효석을 조종하고 있다'는 말을 역원들께 함으로써 최효석이 낙마하게 된 문제가 확대되었지 않았나 생각해 보았다.

신임 교회장의 연성회 감화 등을 통해, 역원들이 전임 교회장을 몰아내고 새 교회장을 추대한 공이 지대함에도 허소장이 그 공을 나꿔채고 있다고 생각한 역원들로써는 교회장을 잘못 모셨다는 그런 발상을 하게 된 것이라 생각된다.

차라리 허소장이라는 존재를 공식 인정하고, 그가 초대의 뜻을 세워준 것에 대해 공치사라도 생각하는 것이 그나마 도리라 생각해 볼 때 참으로 희한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저런 좋지 않는 소문을 피해, 맡았던 감로봉사단을 교구로 이첩시키고 통영으로 단독포교를 나가게 되었는데 그 장소에까지 역원대표로써, 원삼성 강영순씨가 찾아와 '교회장 조종죄'를 뒤집혀 씌우고는, 교회 사택에서 이년 저년이 난무하는 행패가 밤새도록 이어진 여담을 토해내기도 했었다. 실로 어처구니 없는 실상이 아닐 수 없었다.

그가 초대 교회장의 유지를 실행시키는 교회장에 회의를 느꼈으며, 이후의 결혼문제와 결부되어, 어머니를 강제로 쫓아내자는 B교구에서 긴급 소집된 역원회 결의에 따라, 대갱이를 잡아 끌어내라는 추상같은 역원부인의 호령을 뒤로하며 어머니는 끌려 쫓겨나게 된 후, 동삼동과의 통합과 교회장 사퇴 등의 묘수가 난무할 때, 교회본부에서 몇 년간 공부하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대행자를 물색하다 대립되는 등, 사정의 끝은 쉬이 보이지 않던 중, '아! 오야사마' 책 쓴, 나의 잘못을 빙자로 교단에서 제명을 가결하더니, 결국 그 여파가 터전에서 공부하고 있던 그에게까지 미쳤던 것이다.

신풍의 뜻을 알고 역원들이 대동단결하여 초대의 유지에 따르려는 진실하나만 있었더라도 문제는 이렇게 복잡하게 될 여지가 없었을텐데도, 여태껏 거짓과 아첨에 의한 바람몰이에 동참해온 그들이 참을 제대로 분간할 리 있었겠는가. 참으로 초대의 출직후 진실과 거짓조차도 제대로 분간 못하고 굴비엮이듯 방황한 그들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하여 혹자들은 초대의 유지가 끝난 줄 착각할 수도 있겠는데 이는 절대로 이 길을 제대로 모르고 하는 소리이며 오해이다. 앞으로를 두고 보면 어떻게 실끝이 풀려가는 것을 실감해 갈 것이리라.

 

立敎 166(2003)年 9月 28日
天馬布敎所長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