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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 후기
                                                   
立敎 166(2003)年 9月 28日

위 내용은 교조 100년제의 해에 교회본부 참배를 못하도록 제적당하고 그 어눌한 심정을 다스릴 수 없어 立敎 149(1986)年 1月 20日 부산을 출발하여 경북·강원도·경기·서울·충청도·전라도·경남을 거쳐 한달간의 전국일주도보를 하며 천리교의 현주소를 절감한 후 쓴 글이다.

당시 천리교는 복원파들의 선동에 힘입어 현재의 한국천리교단도 신각대신 감로대로 대체하기 위한 준비가 거의 완료된 시점이다.

복원파들의 주장으로는 학자를 불러 친필(오후데사키)을 한국식으로 개역하고, 신각 대신에 감로대 모형으로, 목표는 [나무 대한 천리왕님] 등의 위패로, 교복대신에 두루마기로, 박수는 일본것이므로 치지 않고, 교회본부 대신 본부를 청파동에, 수훈의 리는 교통이 내리고, 오야사마의 붉은 옷 대신에 한복을 입힌 교조님을 교단지에 등장시켜야 하며, 일본과는 일체의 관계를 청산하는 의미로써 이 길의 선인들 대신 성웅 이순신같은 분을 등장시켜 민족의 얼을 고취시킬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얼마만큼 실현되었는지는 모르나 참으로 섶을 지고 불속으로 뛰어든 이단자들의 말로가 불을 보듯 뻔한데도 거짓과 진실조차 분간이 안된 모양들이다.

본 내용이 발송되기 전에 이미 남부지역에서도 W교회와 C교회가 선동하여 전국적인 바람을 주도했으며 이에 S·M ·D·J·K·Y교회등이 넘어갔거나 흔들리고 있었으며 청정교회인 D교회에서조차 일부가 넘어가는 등, 소용돌이의 여세는 걷잡을 수 없었다. 참고로 K교구에서도 교령을 받아 그해 3월 18일 교구월차제를 기해 감로대로 바꿀 것을 이미 천명했었으며 앞으로의 목표를 감로대 모형으로 만들 것이 확실시 된 때에 피라미같은 2년차의 용재(1983년 10일 5일 포교)가 보낸 1000여 통의 본 내용이 준 파장은 막대하였던 것이다. 본인이 4월 11일 날 발송을 완료하고 4월 18일 날 만난 복원파인 동산교회 박회장은 다된 밥에 재뿌렸다며 역정내길레 "당신은 아마데라스오미카미를 보고 참배를 하는 것을 보니 왜놈이 틀림없구나."며 맞받아 쳤고, D교회장은 자신의 청주에 있는 산하도 넘어갔지만 대세가 이미 기울었다며 질책하는 등, 비상이 걸렸었다.

그래도 던져진 소명을 다하고자 익일인 4월 19일부터 연합회 창립을 토론하는 날 함께 하였으나 워낙 피래미라 밖에 서성거렸더니 "일을 저지른 장본인이 들어와 참관하라"는 독려에 들어가(진해교회 청년회관) 참관하였으며 익월인 5월 18일 날 지금의 한국교단의 전신인 "연합회 창설주비위"가 구성되었으며 6월 18일 "연합회"가 공식출범하여 이동규선생이 그 장을 맡겨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참으로 아찔한 순간에 이 길에 들어와 자칫 이단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교단의 반쪽이나마 구제하게된 이론을 정립 확산케 한 이면에 피래미와 같은 자의 功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자는 아마 한사람도 없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회생의 모험자]이신 최재한 선생이 감화 선상에서 유독 나의 눈만 빤히 쳐다보시고 말씀하신 그 연유를 나는 몰랐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다 뜻이 있었지 않았을까 되새겨 느껴지지만 피라미가 그 분의 유지문제로 냉담하기조차 했었던 장례식을 울음바다로 만드는 조사를 낭독했으며, 그 분의 유지를 실행하는 것만이 이 땅의 정통성을 위한 길임을 깨닫도록 지혜와 용기를 주신 것 또한 그 분의 혼이 도와주시고 계심이라 어렴풋이 느낀 적이 있다.

그렇다면 떠내려가지 않고 본지를 명분으로 지켜온 그들은 과연 그 깊이를 깨닫고 있었을까. 자세한 이야기는 차후로 미루겠지만 잠시 언급하고싶은 것은 대한측으로써는, 괴뢰와 같은 본인이 합피를 즐겨입고 포교하는 것에 대해, 문화공보부(당시 이어령 장관) 종무과에 의의를 제기함으로써 1989년 2월 22일 자의 공문(연합회장 앞)이 오게 되었었는데, 임원들의 결의에 의해 '신각은 차차로 바꾸고 복장은 나를 불러 입지 못하도록 타이르면 된다.고 합의가 되었던 것이다.

임원들의 결의에 따라, 1989년 3월 3일 '합피를 입지 말 것'을 요구해 옴에 따라 '모본을 생각해야 한다. 오히려 정부의 간섭을 계기로 전 용재가 합피 입기 운동이라도 해야겠는데 이는 모본에 없는 짓'이라고 항명한 덕택에 참배금지 당했던 것이다.  

참으로 모본에 없는 담합행위를 지지하지 않았던 본인만 반동분자로 낙인 찍혔던 것이다. 나의 철학은 위대한 천리교인 최재한 선생의 철학과 동일하며 그것은 곧 순서를 존중하며 지바에 이르는 신앙이다. 이는 말만 번드르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본부에서 합피를 입는다면 우리도 입어야 하며 총칼이 들어와도 목숨걸고 지켜내야 할 것은 지켜내야 되지 않겠는가.

교회안에서나 바깥에 구분치 않고 리를 지켜낼 수 없는 신념체계의 결여는, 천황이나 대통령이나 차관정도나 타종교의 관념 따위에 타협할 수 없는 모본이 아니고서는, 소위 높은 산을 무너뜨려 평탄하게 밟아 고르시려는 삽날조차 버린 것 아니겠는가.

그 신념 덕택에 한 종단에서 무려 5번의 공식 제명이 이뤄졌던 것은 아마 종교 역사상 전대미문의 일일지도 모른다. 허나 사람의 조직에서 천만번을 제적되어도 오야사마는 나를 버리시지 않으리라는 확신만은 언제든지 확고하다. 조직의 틀을 뛰넘어 천리에 맞추게 되면 자유자재라는 리가 활동한다는 것을 수 없이 느껴왔다. 정말 대자유의 길의 중심에 우뚝 선 위용이 자랑스러 견딜 수가 없었던 날들이 전신을 휘감아 왔던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의 명에 절대복종하겠다는 것은 모본에 없는 배교행위이며 이는 한때 내무차관의 천리교 탄압 때 위대한 최재한선생같은 분이 간여치 않았다면 이미 한국의 천리교는 그 정통명맥이 끊어졌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 때 神名을 바꾸고 한국식으로 하라고 종용한 내무차관의 말이 맞다며 속으로 쾌재를 부르짖다가 용기와 신념의 화신이신 최재한 선생이 노환으로 힘을 잃어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민족감정을 불러 넣어 순진한 신자들을 혹세무민하여 이단 결성에 합의 했지 않았든가.

떠나간 자나 남은 자의 신념은 피차일반이었다. 그것은 원남성교회 후계자 유지(遺志)를 위한 공증에 불만을 품었을 때부터 조직적 이해관계 때문에 터전파 대한파가 특성을 달리했을 뿐이지 목숨을 바쳐 지켜야겠다는 용기와 신념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은 지난 20여년 간의 이쪽 저쪽의 행보가 이를 증명하고 있지 않는가.

참고로 그해 1986년 8월 당시 표통령이었던 하다바야시 선생 일행이 교회본부 특사로 마산 크리스탈 호텔 등에서 신바시라(眞柱님)의 뜻을 전해오기도 했었다. 당시의 그 유명한 말씀을 다음 기회에 전하고자 한다.

교조 100년제의 마디가 시사하는 바는 엄청난 것이었다. 교단의 조직이 복원이라는 미명아래 한국식으로 만들어야 된다는 바람에 휩쓸려갈 그 교조 100년제의 해에 지바귀참을 금지당한 그 아눌한 심정을 실천으로 달래고자 전국일주를 결행하여 곳곳의 실상을 보고 먼저 깨달았기에 망정이지 - 그 때 그러한 결단의 본 파발마가 없었다면 오늘의 천리교한국교단은 없었을 것이 명백하리라 생각된다.

그렇지 않겠는가. 적어도 교통이 교령까지 발동하여 전교구에서 이미 합의가 결정된 사정을 무슨 수로 바꿔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만약 그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무리가 다소 있다손 치더라도, 대세를 그르칠 수 있는 명분과 힘은 소멸되고 왜놈의 앞잡이 정도로 교단에서 돌림이나 당할 수밖에 없는 초라한 모습의 어느 단위 교회정도는 있을 수 있을까 모르겠다.

참고로 그해 감로대를 봉안한 청파동에 岐美, 京城, 八木대교회장이 참배한 사진이 대한천리교단지에 톱기사로 등단까지 된 마당에 누가 이를 말릴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가. 다행히 그 사진을 근거로 '한국의 사정을 조장하는 대교회장'들이라며 교회본부에 항명한 덕택에 그분들이 도우지를 통해 공식사과(立敎 150(2003)年 道友 6月 호)까지 하게 되었으니 그 전말이 대충 이해될지 모르겠으나 여전히 사정에 휩싸여 있지 않는가. 그런 면에서 1000여통에 달하는 파발마가 던진 파장은 곧 신풍이 되어 터전파를 지켜낸 대의명분이 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자, 게 있다면 한마디라도 해 보면 답은 명약한 것이리라.

이제 실끝을 찾는 일이다. 교조 110년제를 만나 원남성교회장이 교체될 정도의 신풍을 불렀었다. 이제 교조 120년제를 목전에 둔 지금, 여간아닌 술수가 휘몰아칠 징후가 있겠지만 그 모두를 신의에 따라 양분된 교단의 하나를 위해 공통분모창출에 나서야겠다.

원남성교회 후계자 공정이 잘못되었다며, 그 대행자를 외환관리법 등으로 고발한 당사자(**戌 외)들이, 또 어떤 흉계를 꾸밀지 모른다. 또 무슨 법리를 적용하여 핍박하여, 그쪽을 내쫓고 이쪽을 앉혀 수렴청정의 궁리를 하며, 두 개가 하나되는 길을 운운할 것이며 통합인 동시에 초대의 뜻인 양, 혹세무민할지도 모른다. 그들의 머리에 과연 이념이 존재했겠는가. 나와 관계있는 자를 앉히기 위해 터전을 왜곡하며 떠든 그 자들이 과연 진실을 말해 온 것일까. 굴비엮듯이 자기 편을 만들기 위한 수작들이었을까. 그런 게임에 놀아난 신자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누구의 말에 장단을 맞추어야 할지 몰라 방황하다가 길을 떠난자가 30만을 헤아린다고 하면 누가 믿겠는가. 증빙이 되지 않거들랑 40만이라고 떠벌린 그 신자들은 과연 어디로 갔는가. 한번 찾아보라. 이쪽 저쪽을 다 합해 10000명도 남지 않았다고 보는데 참인지 거짓인지 한번 자세히 살펴보라 거짓이겠는가.

초대 최재한 선생이 '대교회장과 공증한 것을 죽어도 파기할 수 없다'는 영남합동법률사무소의 공증을 뒤엎기 위해 흉기로 위협하여 부산합동법률사무소와 새로히 공증한 그 공증서에도 결론적인 후계자는 최효석이었다.

이는 이쪽이든 저쪽이든 최재한을 초대로한 원남성교회라는 명칭에서는 최효석을 후계자로 지명하신 초대의 뜻을 묵과해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진실이 숨어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다. 이제 더 이상 이 진실게임을 허구로 덮지 않아야될 시순이 도래해 왔음이다.

일본인인 대교회장이 허모씨를 대행자로 공증한 것 때문에, 그것을 피해가기 위해 터전을 받들지 않겠다는 발상이 나왔고 이에 교단을 움직이는 재건회가 결성된 것을 깊이 생각해 보면 실끝이 어디에서 맺혔는가는 절실히 느낄 수 있으리라 짐작되지 않는가.

잠자고 있던 천리교를 깨배주신 위대한 천리교인 최재한 선생이 남긴 그 귀중한 유산들을 갈갈이 찢어서 갈라먹기 하고 있는 이 현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이념이 달라서 갈라섰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그 이념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는가 그 전모를 밝혀보라. 초대의 뜻을 말살하면서까지 뒤집기해야될 가치가 있는가 보자꾸나.

무적함대와 같은 원남성을 조각배를 만든 자들의 양심에 묻자. 덮혀 버릴  것 같고 위작하면 될 것 같지만 그런 정신으로 초대를 말살한 교단사를 편찬하여 정통성을 부여하려고 해도 역사가 가만두지 않을 것임을 아는가.

이제 초대의 뜻에 따라 갈갈히 찢어 나눠먹기 된 교회를 내 놓아야 된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쫓겨나며 데리고 간 교회들도 내 놓지 않을 명분이 있다면 공개적으로 말해 보라.

입이 열 개라도 할말이 있겠는가. 그나마 양심이 있었던 오직 한분이 있었다면 후계구도가 초대의 뜻과 배치된다고 하여 그 큰 교회를 버리고 칼자루를 놓으신 K교회 2대였던 분 외에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원남성 산하의 일등교회로써 교회장 대행의 공증에서 제외된 울분의 사실을 전해들은 충신(?)들에 의해 여러 가지 묘수(?)들이 저질러진 그 원인 제공의 한 일면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 ,

그리고 그 바람에 날려간 참신한 이 길의 젊은이들과 영원한 생명의 밧줄을 놓게된 수많은 교신자들만 희생양이라 생각되지 않는가 말이다.

후계를 맡아 명색이 교회장으로 등극한 젊은 후계자와 교회장들은 양심이 있다면 실끝을 찾아 나서는 중차대한 사정해결의 시순에 동참해야겠다. 만약 이를 무시한다면 양심에 물어 교회장이든 후계자이든 그 직을 홀연히 던져 버려야 한다. 그럴 용기도 없다면 이 길을 이야기할 자격은 아무래도 없는 듯 하다. 언제까지 타성에 젖어 이 길을 말아먹는 대열에 앞장 설 것인가 한번쯤 되돌아 볼 수는 없겠는가. 정말 자기의 아픔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희생플라이는 아니더라도 팀의 장래를 위해 功이 되게 할 수는 있지 않겠는가.

좋다. 여태까지는 제대로 몰랐었고, 또 대세에 휘몰려 어쩔 수 없었다손치더라도 자신도 자식을 후계자로 지명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냥 묵과해서는 절대로 안될 것이다. 만약 자식을 후계로 생각지 않는다면 이유변명의 거짓 가면을 홀연히 던져야 한다. 자기 자식조차 구제할 수 없는 그것을 진실이라는 가면을 씌워 더 이상 혹세무민 않아야 한다.

최효석씨가 교회장의 직에 있으면서도, 협박과 핍박에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사표를 제출하고 홀연히 떠난 것은 사나이다운 그의 면모가 분명하다고 생각된다. 모든 것을 궤고 있던 그가 사표를 던진 후의 심정을 죽음으로 대신해야겠다고 생각해 보지 않았을 것 같은가. 그가 그 괴로움의 와중에서 죽음의 길을 택했다면 할 말은 많았을 것이다. 그 따위 운운하며... 특히 역원이나 형제들은 영원한 웬수같은 넘이 죽었으니 혹 하나를 떼어 버렸다고, 신님의 수호라며 기뻐 박수를 칠 것이 분명한 것이 작금의 현실이지 않았는가.

믿음과 신앙으로 점철된 리의 친자관계에 있다며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울 것이 없다는 양심으로 한번만 재단해 보라. 과연 믿어지는가. 아니면 믿고 있는가. 아무렴 믿을 자 누구인가. 대교회장이겠는가. 상급교회장이겠는가. 아니면 가장 믿을 수 있는 산하 교회장이겠는가. 아니면 자식이겠는가. 형제이겠는가. 게 누가 자신의 입지를 버리고 초대의 뜻에 따라야 한다며 바른 말 한마디 하신 분이 계신다면 한사람만 찾아 보라. 참으로 눈을 감을 수조차 없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가슴을 치고 계실 초대를 생각해 보았는가.

눈을 뻔히 뜨고 그 자리에까지 올랐는데도 누구하나 그것을 지켜주기 위해 노심초사 해 본 자 있기는 한가 말이다. 우여곡절을 겪었는데도 지켜내지 못한 한을 초대보기 민망한 그 심정을 헤아려 본 자 게 누구 있기나 하겠는가. 분명히 말하건데 이제 시순이 도래해 왔다. 사욕을 저 버리고 초대의 뜻을 위해 하나가 된다면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며 교단발전의 한 획으로 남으리라 생각되는 바이다.

 

 

立敎 166(2003)年 9月 28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