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보부

종교의 자유침해

침해된 권리

침해된권리2

각하된 소원

천리교단 귀하

신악가 개역유감

신악가 개역 설명

개역과의 인연

교조100년의 마디

포교소제적

희대의 종교재판

     
그 유명한 100년제의 마디
이단을 향해 가는 교단을 보다못해 든 붓! 

                                                      
立敎149(1986)年 4月 11日 발송

이 길은 구극의 가르침이다. 그것은 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지점인 으뜸인 장소에서 으뜸인 어버이가 직접 가르치는 길이기 때문이다. 즉 터전(지바)으로 가는 길을 신한줄기 길, 구극의 가르침이라 생각한다.

터전은 인간을 잉태·창조한 지점이며 그 증거로써 감로대가 세워져 있고 그곳에 天理王命의 理가 허락되어 있으며 존명(存命)의 교조님(오야사마)이 머무시는 온 인류의 고향이다.

존명하신 교조님께서 터전에 허락하신 감로대와 天理王命의 理를 각지·각처에서 예배의 목표(目標)로써 배대받아 그 효능을 믿어오지 않았든가.

그런데 -

현재 무서운 음모가 교단내에 싹트고 확산되어감에 역사의 동참자로써 이단을 보다못해 감히 무거운 붓을 들었다.                  

                                         立敎149(1986)年 4月 11日 발송

-------------------------------------------------------------------

오야사마께서 문을 열으시고 세계를 평탄한 땅으로 밟아 고르시려 현신(現身)을 감추신지 어언 100년, 인류의 본고장 터전에서는 백년제의 행사가 성스럽게 행해지고 신바시라(眞柱)께서는 신전강화 도중 감격의 눈물을 흘리시며 마음의 역사에 정진해 줄 것을 당부하고 계신다. 마음의 역사는 각한의 시순에 신님이 자유자재로 드나들어 세계구제에 쓰일 수 있는 순직한 혼을 만드는 것이라 깨닫는다.

교조 100년제의 중차대한 시순에 터전이, 교조님이, 그리고 眞柱님이하 상급이 일본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한국적인 천리교를 위해 복원해야 된다며 청파동에다 본부를 건립하여 감로대를 세워놓고는 목표의 리를 없애 버리고 한갖 인간이 교조님인양 수훈의 리를 내리고 [대한 나무 천리왕님][나무 교조님][나무 조령님]이라는 기상천외의 신명을 작명해 놓고는, 교령을 발포('85.11월 김기수 교통에 의한), 한마음 한뜻이라는 미명아래 혹세무민하는 무서운 음모가 꾸며지고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도저히 간과할 수 없어 햇병아리에 불과하지만 양심있는 혼을 깨배고자 붓을 들었다.

금, 은, 동, 정미와 껍질, 쇠와 녹을 가르고 채로 치신다던 말씀이 바로 이것이로구나, 안에서도 시끄럽고 바깥도 시끄럽다고 하신 말씀이 이제야 보이는 것 같구나, 이것이 곧 100년제 마디라는 것이구나, 피를 뽑아내지 않고서는 벼농사를 지을 수 없듯이 잡초를 뽑아 주시는 것이구나. 이것은 인간이 하는 일이 아니라 신님이 안을 소제하시는 모습이다. 맞아, 믿으나 밎지 않으나 반대하는 자도 귀여운 내 자녀라고 하신 말씀 이제야 깨달아지는 구나.

같은 나무도 차츰차츰 손질하는 것도 있고
그대로 쓰러뜨리는 나무도 있다 3-132

고 하셨는데 지금 신님이 필요로 하시는 것은 써 보시고 비뚤어진 것은 버리고 곧고 바른 용재를 모으시는 일이지 고대광실 큰집 짓는 것 바라시는 분이 아니지 않으신가.

마음이 비뚤어져 있을 때는 바른 것도 꾸부러지게 보이듯이 각자의 인연으로 가는 길을 깨닫기는 어렵겠지. 태풍의 눈처럼 바람을 일으키면서도 정작 태풍의 눈은 바람이 없다든가. 그러나 진실을 깨닫게 되면 자기 모순에 빠져들고 말 것이 뻔한 일을 신앙의 탈을 쓰고 저럴 수는 없을텐데...

"고대광실 높은 집이 줄줄이 서 있었건마는 형체도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벌레우는 소리만 나는 날이 온다. 아~라 무섭고 겁난다는 생각이 들 때는 벌써 세계는 리에 말려든다. 의심하는 자 의심하여 보아라 보고 끊는자 끊어 보라 한사람이 작정하면 만명을 도울 수 있다. 차물의 리를 듣고 깨우친 자는 마음이 착한 인연" 1901.3.16 참조

이라며 재산을 팔아서라도 남을 도우는 일에 전념한다면 그때까지의 마음을 신이 받아들여 평탄한 땅으로 밟아 고르실 때 신이 가슴의 소제를 하여 감로대를 세운다고 하시지 않았던가.

분명 용재는 세상의 신자들과는 다른 것이라 깨우쳐 주셨건만 신님이 하시는 일을 보고 정미(正米)가 되었다고 기뻐하거나 껍질로 날려 간다고 원망해서 될 일이 아닌 우리 모두가 깨달아야 할 회오리가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이 마디를 즈음하여 이 길에 몸담은 용재의 한 사람으로써 사명감을 통감하며 뿌리에 대한 가르침이 미치지 못함을 뼈져리게 느끼고 있다.

가르침의 핵심을 모른 채, 별 중요하지도 않는 것을 이 길의 전부인양 가르쳐 온 결과가 이런 중대한 사태를 빚어온 것이라 생각한다.

오후데사키와 지도서를 살펴보면 터전(지바)에 허락된 天理王命의 리와, 감로대, 터전은 3위일체로써 그 리가 하나라는 것을 가르쳐 주신 오야사마의 말씀의 핵심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터전의 이 흙을 파내어서는
장소를 바꾸어 놓을 뿐이다
十一 -8

우리는 이 귀중하고 보배로운 터전의 리를 장소만 바꾸어 허락받아 예배의 목표로써 삼고 있지 않는가. 우리는 이 리를 있다고 믿고 효능을 얻어 왔지 않는가. 터전에서 허락된 리가 흙이면 어떻고 거울이면 어떠랴. 사실의 본말을 떠나 이 귀중한 목표와 모셔둔 집이 터전에서 허락한 것을 의심하고 있다면 이미 신앙은 물건너 간 것이 아닐까. "형체를 보지 말고 리를 보라"며 면면히 이어져 온 선인들의 신앙조차 부정할 신앙이라면 믿음이 없다고밖에 더 할말은 없을 것 같다.

그렇다. 이제까지 우리는 무엇을 믿어 왔으며 왜 믿었는가 하는 본질부터 모르고 왔던 것이 아닐까. 정작 절대자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며 그의 설계도를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이 열리지 못한 탓이 아닐까.

나는 아버지로부터 조부님과 증조부님, 그리고 뿌리도 許가라는 것을 듣고 믿어왔다. 그런데 어느날 아버지가 세력좋은 김씨한테 꼬여 앞으로는 우리 집안은 김씨로 성을 바꾼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효도하는 것일까?

이 길은 터전에 리가 연결되는데에 신앙의 생명이 있지 않을까. 터전은 인간을 창조한 장소이며 그 증거로써 감로대가 세워져 있으며 십전의 수호로서 활동하시는 天理王命의 으뜸 리가 허락된 세계 유일의 지점이다. 지금은 잠시 모형으로 세워져 있으나 신님을 빗자루로 세계를 소제하는 각한이 오면 본 감로대가 세워지고 상단에 평발이 얹혀 하늘로부터의 혜택인 식물이 주어진다고 가르쳐 주시었다.

이 식물의 혜택을 받은자는 115세까지 않지 않고 죽지 않고 쇠하지 않도록 마음에 따라 언제까지라도 살 게 하는 진기한 구제를 꾀하고 계시는 것이 신님의 의도이며, 이 말대의 리를 받을 수 있는 자는 두말할 것도 없이 터전에 리가 연결되는, 혼이 터전에 돌아오는 자일 것이라 믿고 있다.

감로대야말로 터전 이외는 세울 수 없는 단 하나밖에 없는 보배로운 온세상의 어버이인 것이다.

이 대를 어떠한 것으로 생각하는가
이것은 온세상의 어버이인 거야 10-22

조상을 바꾼다고 해도, 신앙의 뿌리를 바꾸어도 그저 멍청히 바라보고 따라간다면 섶을 지고 불속에 같이 가잔다고 하여 자기 죽을 줄 모르고 가는 믿음이라면 한번 쯤 생각해 볼 일이 아닐까.

껍질로 날려가는 그 속에 혹여 알맹이가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 잘 생각해 본다면 길은 항시 열려 있다고 본다. 신님의 지도에는 국경은 없는 것이라 생각된다. 고기를 담았던 상자에서 향수 냄새가 나기를 원한다면 모순이 아닐까. 터전 주위에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생겨나고 법률의 간섭에 맞출 수 없어 박해를 받아온 이 길의 역사가 있지 않은가. 설사 그 곳에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일본 냄새가 난다고 하여 된장을 찍어 바른다면 그것이 속과 겉이 다른 사이비가 아닐까.

이왕에 감로대도 일본땅에서 나온 것(?)이니 순 한국식으로 바꿀바에야 이 땅에 있는 첨성대나 을밀대도 있고 두지나 등대 모형도 있으니까 그 곳에 한국사람 만드는 [대한 나무 천리왕님]이 앉아 쉬기 편할 것 같은데 하필이면 세계 유일 지점에 세워둘 수밖에 없는 감로대를 곳곳에 세우겠다는 그 저의는 무엇인가.

앞으로 바지저고리입고 양반다리 앉아 다딤이 방망이 두드리며 꾕과리 가락에 맞춰 고전무용하면서 터전의 리도 없는 곳에 제물차리고 경문 읽어가는 모습이 가관일 것이다. 리도 없는 곳에 영혼구제 한답시고 비명에 죽은 귀신들 모셔두면, 용재가 아니라 박수무당, 산신도사가 제격이 아닐까.

우리는 감로대세계를 건설하시려는 신님의 용재로써 오야사마의 도구들이다. 설사 응법으로 이 길을 없애려 하고 총칼로써 짓밟는다고 하더라도 오야사마가 겪으신, 추운 겨울 옥중에서의 노고를 생각한다면 리도 못보시고 은신하신 모본의 어버이를 생각한다면 너무나 부끄럽고 죄송스런 일이라 생각된다.

열심히 한다고 하면서도 혹시나 싶어 되돌아 보일 때가 한두 번이 아니며, 오야사마의 노고를 생각하면 눈물이 날만큼 고마운 길을 가는 우리들이 아닌가. 오야사마가 걸으신 모본은 선반위에 얹어놓고, 등따시고 배부르니까 천박한 인간생각이 고개를 치켜드는 모양이다. 고생하면서도 즐거운 구극의 길이 어디 또 있다면 나도 가겠건만 순한국식 천리교가 뿌리도 내리기 전에 시들어버릴 것은 이미 정해진 일임에도 바람에 휩쓸려 가고 있으니 이를 차단하지 않고서는 베길 수가 없다는 생각에서 일을 저지르는 것이다.

하나의 입을 통해 먹고 말할 수 잇도록 배려하여 설계하신 것을, 말하는 입과 밥먹는 입 두 개를 원한다고 한다면 신님은 얼마나 답답해 하실까.

세상사람의 신상·사정을 해결할 수 있는 곳이라고 눈만 뜨면 외쳤던 분들이 우리의 사정은 치료할 수 없어 학자들을 불러 친필을 바꿔야한다는 논리에다 맡긴다는 것은 중이 제머리 못갂는 것에 비유될지 모르지만 한번쯤 집고 넘어야 할 중대한 문제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지 않는가.

터전의 리를 전하고 으뜸의 리를 가르쳐온 이 땅의 선인들을 생각하더라도, 처음 입신한 그 고마움을 갚기위해 비방과 조롱속에서도 리를 전하시기 위해 배고픔도 외로움도 오직 리에 의지한 채 걸어오신, 관헌의 박해를 피해 승복을 입고 박자목을 치면서도 리만은 지켜오신 선인들을 보더라도 --

나는 분명히 어버이신님을 확신하고 있다. 리의 존귀함을 몰랐다면, 하고많은 길 중에 이 길을 택할 필요조차 없었을 것이다.

세상의 길은 천갈래 만갈래 그 쪽 사정에 맞춰서 가는 길이 아니지 않는가. 벽한겹 막혀지면 손에 잡혀주어도 모른다지만 우리의 선인들이 밤낮외친 성진실한 말씀들이 일본 국조신을 모셔놓고 으뜸인 신이라고 사기나 친 사기꾼이 아니라는 것 쯤은 반드시 인정해야만이 참 신앙이 되리라 싶다. 깊이 생각하여 후회없는 길이 되도록 혼신을 다해야 되지 않을까.

진실이 신의 마음에 맞지 않으면
아무리 마음 기울여 애쓴다 해도 12-134

가지끝은 무성해 보여도 대수롭잖아
부딪히면 뿌려진다 앞으로 두고 보라 5-42

 

立敎 149(1986)年 4月 11日
天理敎 **布敎所長 드림

 

                                                     立敎 166(2003)年 9月 28日
옮긴 후기

위 내용은 교조 100년제의 해에 교회본부 참배를 못하도록 제적당하고 그 어눌한 심정을 다스릴 수 없어 立敎 149(1986)年 1月 20日 부산을 출발하여 경북·강원도·경기·서울·충청도·전라도·경남을 거쳐 한달간의 전국일주도보를 하며 천리교의 현주소를 절감한 후 쓴 글이다.

당시 천리교는 복원파들의 선동에 힘입어 현재의 한국천리교단도 신각대신 감로대로 대체하기 위한 준비가 거의 완료된 시점이다.

복원파들의 주장으로는 학자를 불러 친필(오후데사키)을 한국식으로 개역하고, 신각 대신에 감로대 모형으로, 목표는 [나무 대한 천리왕님] 등의 위패로, 교복대신에 두루마기로, 박수는 일본것이므로 치지 않고, 교회본부 대신 본부를 청파동에, 수훈의 리는 교통이 내리고, 오야사마의 붉은 옷 대신에 한복을 입힌 교조님을 교단지에 등장시켜야 하며, 일본과는 일체의 관계를 청산하는 의미로써 이 길의 선인들 대신 성웅 이순신같은 분을 등장시켜 민족의 얼을 고취시킬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얼마만큼 실현되었는지는 모르나 참으로 섶을 지고 불속으로 뛰어든 이단자들의 말로가 불을 보듯 뻔한데도 거짓과 진실조차 분간이 안된 모양들이다.

본 내용이 발송되기 전에 이미 남부지역에서도 W교회와 C교회가 선동하여 전국적인 바람을 주도했으며 이에 S·M ·D·J·K·Y교회등이 넘어갔거나 흔들리고 있었으며 청정교회인 D교회에서조차 일부가 넘어가는 등, 소용돌이의 여세는 걷잡을 수 없었다. 참고로 K교구에서도 교령을 받아 그해 3월 18일 교구월차제를 기해 감로대로 바꿀 것을 이미 천명했었으며 앞으로의 목표를 감로대 모형으로 만들 것이 확실시 된 때에 피라미같은 2년차의 용재(1983년 10일 5일 포교)가 보낸 1000여 통의 본 내용이 준 파장은 막대하였던 것이다. 본인이 4월 11일 날 발송을 완료하고 4월 18일 날 만난 복원파인 동산교회 박회장은 다된 밥에 재뿌렸다며 역정내길레 "당신은 아마데라스오미카미를 보고 참배를 하는 것을 보니 왜놈이 틀림없구나."며 맞받아 쳤고, D교회장은 자신의 청주에 있는 산하도 넘어갔지만 대세가 이미 기울었다며 질책하는 등, 비상이 걸렸었다.

그래도 던져진 소명을 다하고자 익일인 4월 19일부터 연합회 창립을 토론하는 날 함께 하였으나 워낙 피래미라 밖에 서성거렸더니 "일을 저지른 장본인이 들어와 참관하라"는 독려에 들어가(진해교회 청년회관) 참관하였으며 익월인 5월 18일 날 지금의 한국교단의 전신인 "연합회 창설주비위"가 구성되었으며 6월 18일 "연합회"가 공식출범하여 이동규선생이 그 장을 맡겨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참으로 아찔한 순간에 이 길에 들어와 자칫 이단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교단의 반쪽이나마 구제하게된 이론을 정립 확산케 한 이면에 피래미와 같은 자의 功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자는 아마 한사람도 없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회생의 모험자]이신 최재한 선생이 감화 선상에서 유독 나의 눈만 빤히 쳐다보시고 말씀하신 그 연유를 나는 몰랐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다 뜻이 있었지 않았을까 되새겨 느껴지지만 피라미가 그 분의 유지문제로 냉담하기조차 했었던 장례식을 울음바다로 만드는 조사를 낭독했으며, 그 분의 유지를 실행하는 것만이 이 땅의 정통성을 위한 길임을 깨닫도록 지혜와 용기를 주신 것 또한 그 분의 혼이 도와주시고 계심이라 어렴풋이 느낀 적이 있다.

그렇다면 떠내려가지 않고 본지를 명분으로 지켜온 그들은 과연 그 깊이를 깨닫고 있었을까. 자세한 이야기는 차후로 미루겠지만 잠시 언급하고싶은 것은 대한측으로써는, 괴뢰와 같은 본인이 합피를 즐겨입고 포교하는 것에 대해, 문화공보부(당시 이어령 장관) 종무과에 의의를 제기함으로써 1989년 2월 22일 자의 공문(연합회장 앞)이 오게 되었었는데, 임원들의 결의에 의해 '신각은 차차로 바꾸고 복장은 나를 불러 입지 못하도록 타이르면 된다.고 합의가 되었던 것이다.

임원들의 결의에 따라, 1989년 3월 3일 '합피를 입지 말 것'을 강요해 옴에 따라 '모본을 생각해야 한다. 오히려 정부의 간섭을 계기로 전 용재가 합피 입기 운동이라도 해야겠는데 이는 모본에 없는 짓'이라고 항명한 덕택에 참배금지 당했던 것이다.  

참으로 모본에 없는 담합행위를 지지하지 않았던 본인만 반동분자로 낙인 찍혔던 것이다. 나의 철학은 위대한 천리교인 최재한 선생의 철학과 동일하며 그것은 곧 순서를 존중하며 지바에 이르는 신앙이다. 이는 말만 번드르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본부에서 합피를 입는다면 우리도 입어야 하며 총칼이 들어와도 목숨걸고 지켜내야 할 것은 지켜내야 되지 않겠는가.

교회안에서나 바깥에 구분치 않고 리를 지켜낼 수 없는 신념체계의 결여는, 천황이나 대통령이나 차관정도나 타종교의 관념 따위에 타협할 수 없는 모본이 아니고서는, 소위 높은 산을 무너뜨려 평탄하게 밟아 고르시려는 삽날조차 버린 것 아니겠는가.

그 신념 덕택에 한 종단에서 무려 5번의 공식 제명이 이뤄졌던 것은 아마 종교 역사상 전대미문의 일일지도 모른다. 허나 사람의 조직에서 천만번을 제적되어도 오야사마는 나를 버리시지 않으리라는 확신만은 언제든지 확고하다. 조직의 틀을 뛰넘어 천리에 맞추게 되면 자유자재라는 리가 활동한다는 것을 수 없이 느껴왔다. 정말 대자유의 길의 중심에 우뚝 선 위용이 자랑스러 견딜 수가 없었던 날들이 전신을 휘감아 왔던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의 명에 절대복종하겠다는 것은 모본에 없는 배교행위이며 이는 한때 내무차관의 천리교 탄압 때 위대한 최재한선생같은 분이 간여치 않았다면 이미 한국의 천리교는 그 정통명맥이 끊어졌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 때 神名을 바꾸고 한국식으로 하라고 종용한 내무차관의 말이 맞다며 속으로 쾌재를 부르짖다가 용기와 신념의 화신이신 최재한 선생이 노환으로 힘을 잃어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민족감정을 불러 넣어 순진한 신자들을 혹세무민하여 이단 결성에 합의 했지 않았든가.

떠나간 자나 남은 자의 신념은 피차일반이었다. 그것은 원남성교회 후계자 유지(遺志)를 위한 공증에 불만을 품었을 때부터 조직적 이해관계 때문에 터전파 대한파가 특성을 달리했을 뿐이지 목숨을 바쳐 지켜야겠다는 용기와 신념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은 지난 20여년 간의 이쪽 저쪽의 행보가 이를 증명하고 있지 않는가.

참고로 그해 1986년 8월 당시 표통령이었던 하다바야시 선생 일행이 교회본부 특사로 마산 크리스탈 호텔 등에서 신바시라(眞柱님)의 뜻을 전해오기도 했었다. 당시의 그 유명한 말씀을 다음 기회에 전하고자 한다.

교조 100년제의 마디가 시사하는 바는 엄청난 것이었다. 교단의 조직이 복원이라는 미명아래 한국식으로 만들어야 된다는 바람에 휩쓸려갈 그 교조 100년제의 해에 지바귀참을 금지당한 그 아눌한 심정을 실천으로 달래고자 전국일주를 결행하여 곳곳의 실상을 보고 먼저 깨달았기에 망정이지 - 그 때 그러한 결단의 본 파발마가 없었다면 오늘의 천리교한국교단은 없었을 것이 명백하리라 생각된다.

그렇지 않겠는가. 적어도 교통이 교령까지 발동하여 전교구에서 이미 합의가 결정된 사정을 무슨 수로 바꿔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만약 그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무리가 다소 있다손 치더라도, 대세를 그르칠 수 있는 명분과 힘은 소멸되고 왜놈의 앞잡이 정도로 교단에서 돌림이나 당할 수밖에 없는 초라한 모습의 어느 단위 교회정도는 있을 수 있을까 모르겠다.

참고로 그해 감로대를 봉안한 청파동에 岐美, 京城, 八木대교회장이 참배한 사진이 대한천리교단지에 톱기사로 등단까지 된 마당에 누가 이를 말릴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가. 다행히 그 사진을 근거로 '한국의 사정을 조장하는 대교회장'들이라며 교회본부에 항명한 덕택에 그분들이 도우지를 통해 공식사과까지 하게 되었으니 그 전말이 대충 이해될지 모르겠으나 여전히 사정에 휩싸여 있지 않는가.

이제 실끝을 찾는 일이다. 교조 110년제를 만나 원남성교회장이 교체될 정도의 신풍을 불렀었다. 이제 교조 120년제를 목전에 둔 지금, 여간아닌 술수가 휘몰아칠 징후가 있겠지만 그 모두를 신의에 따라 양분된 교단의 하나를 위해 공통분모창출에 나서야겠다.

원남성교회 후계자 공정이 잘못되었다며, 그 대행자를 외환관리법 등으로 고발한 당사자들이, 또 어떤 흉계를 꾸밀지가 충분히 짐작된다.

초대 최재한 선생이 '대교회장과 공증한 것을 죽어도 파기할 수 없다'는 영남합동법률사무소의 공증을 뒤엎기 위해 흉기로 위협하여 부산합동법률사무소와 새로히 공증한 그 공증서에도 결론적인 후계자는 최효석이었다.

이는 이쪽이든 저쪽이든 최재한을 초대로한 원남성교회라는 명칭에서는 최효석을 후계자로 지명하신 초대의 뜻을 묵과해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진실이 숨어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다. 이제 더 이상 이 진실게임을 허구로 덮지 않아야될 시순이 도래해 왔음이다.

일본인인 대교회장이 허모씨를 대행자로 공증한 것 때문에, 그것을 피해가기 위해 터전을 받들지 않겠다는 발상이 나왔고 이에 교단을 움직이는 재건회가 결성된 것을 깊이 생각해 보면 실끝이 어디에서 맺혔는가는 절실히 느낄 수 있으리라 짐작되지 않는가.

잠자고 있던 천리교를 깨배주신 위대한 천리교인 최재한 선생이 남긴 그 귀중한 유산들을 갈갈이 찢어서 갈라먹기 하고 있는 이 현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이념이 달라서 갈라섰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그 이념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는가 그 전모를 밝혀보라. 초대의 뜻을 말살하면서까지 뒤집기해야될 가치가 있는가 보자꾸나.

무적함대와 같은 원남성을 조각배를 만든 자들의 양심에 묻자. 덮혀 버릴  것 같고 위작하면 될 것 같지만 그런 정신으로 초대를 말살한 교단사를 편찬하여 정통성을 부여하려고 해도 역사가 가만두지 않을 것임을 아는가.

이제 초대의 뜻에 따라 갈갈히 찢어 나눠먹기 된 교회를 내 놓아야 된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쫓겨나며 데리고 간 교회들도 내 놓지 않을 명분이 있다면 공개적으로 말해 보라.

입이 열 개라도 할말이 있겠는가. 그나마 양심이 있었던 오직 한분이 있었다면 후계구도가 초대의 뜻과 배치된다고 하여 그 큰 교회를 버리고 칼자루를 놓으신 K교회 2대였던 분 외에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원남성 산하의 일등교회로써 교회장 대행의 공증에서 제외된 울분의 사실을 전해들은 충신(?)들에 의해 여러 가지 묘수(?)들이 저질러진 그 원인 제공의 한 일면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 ,

그리고 그 바람에 날려간 참신한 이 길의 젊은이들과 영원한 생명의 밧줄을 놓게된 수많은 교신자들만 희생양이라 생각되지 않는가 말이다.

후계를 맡아 명색이 교회장으로 등극한 젊은 후계자와 교회장들은 양심이 있다면 실끝을 찾아 나서는 중차대한 사정해결의 시순에 동참해야겠다. 만약 이를 무시한다면 양심에 물어 교회장이든 후계자이든 그 직을 홀연히 던져 버려야 한다. 그럴 용기도 없다면 이 길의 장래가 참으로 암담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언제까지 타성에 젖어 이 길을 말아먹는 대열에 앞장 설 것인가 한번쯤 되돌아 볼 수는 없겠는가. 정말 자기의 아픔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희생플라이는 아니더라도 팀을 위해 공이 되게 할 수는 있지 않겠는가.

최효석씨가 교회장의 직에 있으면서도, 협박과 핍박에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사표를 제출하고 홀연히 떠난 것은 사나이다운 그의 면모가 분명하다고 생각된다. 모든 것을 궤고 있던 그가 던진 후의 심정을 죽음으로 대신해야겠다고 생각해 보지 않았을 것 같은가.

눈을 뻔히 뜨고 그 자리에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는데도 지켜내지 못한 한을 초대보기 민망한 그 심정을 헤아려 본 자 게 누구 있기나 하겠는가. 분명히 말하건데 이제 시순이 도래해 왔다. 사욕을 저 버리고 초대의 뜻을 위해 하나가 된다면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며 교단발전의 한 획으로 남으리라 생각되는 바이다.

 

立敎 166(2003)年 9月 28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