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희다고 팔다

2. 젊은이의 메아리

3. 담을 헐라

4. 상대적빈곤

5. 부인회비디오

6. 모본문화

7. 사이비

8. 가슴과 입

9. 도덕과 윤리

10. 신앙신념

11. 용재의 가슴

12. 신명과 수호

13. 부부의 연

14. 종교재판

15. 용재와 신상

16. 씨앗을 뿌리려

17. 선배의 출직

18. 천리교수난

19. 휴거

20. 과대포장

21. 편가르기

22. 인연자각

23. 밥상

24. 이합집산

25. 새 대통령

26. 실끝을 찾아

27. 원칙과 기준

28. 인연자각

29. 민족차별

30. 세계의 보물

31. 초대의 길

32. 어느 주례

33. 불신자

34. 후계자의 길

 

     
初代의 길
                                                           立敎 156(1993)年 9月 호

찬 바람 눈 속에서 피어나는 매화꽃이 있기에 다른 꽃도 피어 간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갖은 비방과 조롱을 받고, 친인척과 친구들과는 의리까지 상하게 되엇으니 어떡하면 좋겠는가. 도깨비에 홀렸다면 물러가 주고 미쳤다면 정신을 바로 차려라"

그야말로 아무도 몰라 주고 이해해 주지 않았던 길을 만드셨던 분이 우리의 오야사마이시다.

이 길은 오야사마를 빼고는 존재치 않는다. 오야사마의 입을 통해 어버이신님을 알 게 되었고 오야사마의 발을 통해 터전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태초의 혼의 인연에 따라 사당으로 정해지신 오야사마는 신격적인 인간일 뿐 아니라 인격적인 신의 동시 표현이며 그 분 속에 태초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하고 있기에 그 분의 말씀을 믿고, 주위 환경 따위에 아랑곳 않고 몸을 송두리째 던져 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오야사마를 현신으로 나타나신 어버이신님과 터전의 리는 하나이며 교리의 근본이다. 그럼에도 교조가 나카야마미키라는 일본인이므로 말할 수 없고 터전이 일본에 있기에 전할 수 없다면, 으뜸을 알리지 않으므로 설사 구제가 되더라도 신념체계의 완성은 어려울지 모른다.

하찮은 구두닦이의 후손이라도 '나의 부모는 그 어려운 가운데 우리들을 훌륭하게 공부시키기 위해 구두닦이를 하셨다'는 것을 말할 수 있다면 그보다 훌륭한 자식은 없다고 본다. 뿌리에 대한 진실이 창피하다거나 부끄러워 말할 수 없다면 그를 신앙인이라고 하기는 곤란할 일이라 생각된다.

천리교의 으뜸은 교조이신 오야사마에 있고, 각처의 교회의 으뜸은 초대의 뜻에 있을 것이다. 종조(宗祖)와 초대의 리를 말대까지 이어가는 교회에서, 종조와 초대의 으뜸하루가 잊혀진다면 그 교회는 사정교회이다.

초대는 그 교회의 매화꽃이다. 초대가 있었기에 다음 꽃이 피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비방 조롱의 길을, 일가 친인척조차도 이해해 주지 않는 그런 길을 초대의 정신 하나로 이어온 그 으뜸을 왜곡할 수는 없다. 초대가 문둥이든 앉은뱅이든 정신병자였든간에 그 지팡이가 없었다면 오늘이란 존재할 수 없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말대의 리를 깨닫지 않고서는 초대의 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영혼말대 자손만대에 고오키가 되기 위해 가시밭 낭떠러지 길도 마다 않고 걸은 길이 초대의 길이다. 그 초대의 뜻에 목표를 모셨고 후계가 이어져 만사람이 구제 받기를 기원하는 곳이 교회이다.

그 교회에 모인 사람은 교회의 사정을 자신의 일로 받아 들임으로써 자신도 구제받고 교회도 구제될 수 있는 것이다. 분명 사정임이 확실한데도 사정이 아닌 것처럼 위작한다면 초대의 뜻은 망가져 버리게 된다.

모여든 교회가 사정교회라면 산하교회 또한 사정교회임을 깨닫지 않고서는 길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시순이 말하고 있음을 모두들은 들리지 않는가. 아무리 거짓을 진실인양 포장해도 거짓은 거짓, 진실은 진실임이 곧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 길이 진실의 길이고 신의 길이 분명한 이상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 확신하는 바이다.

희다고 팔고 있어도

몇 년에 걸쳐 도우에 칼럼을 투고해온 원풍포교소장 탁상희씨의 글은 1993년 9월호에 실린 위의 글을 끝으로 [희다고 팔고 있어도]는 더 이상의 빛을 발하지 못하고 정지 되어 버린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과연 원풍포교소장 탁상희 그는 누구일까. 그리고 왜 그의 글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신세가 되었을까. 아마 글을 관심깊게 보아온 사람은 벌써 그 뜻을 짐작했으리라 생각된다.

'93 EXPO가 열린 해, 5월이라 기억된다. 부산 양정동에 있던 도우사는 예고도 없이, 이사가 단행되었다. 젊은이들이 도우사를 근거지로 모반을 기획하고 있다고 하여 그 주동자들은 축출(?)되고 새로운 시대가 열렸던 것이다.

희다고 팔고 있어도는 그 시대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도전이었다. 국장 부장께 근신할 것을 요구해도 끄덕도 않고 은어를 뱉아내고 있으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인사 단행이 아니라 파격적으로 장소를 옮겨 새 시대를 준비하였는데도, 오히려 탁상희의 모험은 끝나지 않고 두세달 더 계속되다가 기어이 자갈이 물렸던 것이다.

그렇다고 공개적으로 글을 쓸 수 없게 할 수도 없었는데, 탁상희는 베일에 쌓여 있었던 것이다. 과연 누구일까, 그들의 숙제의 답을 물어오길레그 자가 바로 '나'라고 대답했다. 보낸 원고가 실리지 않아 안부를 물었더니, 오부장(?) 왈 '고위층의 지시'로 인해 앞으로 글을 쓸 수 없게 되었다는 전언이었다.

참으로 끈질긴 투혼을 다한 글이 게재되곤 했다. 석재호가 들통나자 과감히 원풍포교소장 탁상희로 둔갑(?)하여 면면히 이어져 오다가 초대 최재한 선생의 10주기를 앞두고 그 전모가 탄로나게 되었고, 그 이름도 사라지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김홍대님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했었다.

元風! 탁상희!
원남성에 새 회오리 바람을 몰고올 元風! 그 이름은 다시 나타날 수 없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원풍의 바람은 아직도 끊이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가 원남성 초대이신 최재한 선생의 20주기를 앞두고 새로운 원풍을 예고하고 있으니, 그 귀추가 주목되지 않을 수 없다.

'93.5.6일

부산 양정동 도우사는 젊은이들의 항명에 마산으로 이전하게 되었고

'93.9월

젊은이의 용기와 기백을 믿고 이 길의 젊음을 깨우기 위해 온 몸을 던졌으나 아무도 그 받침이 되지 못한 채, 그나마 혼을 깨우리라 기관지인 도우를 통해 발표되어오던 [희다고 팔고 있어도]는 자갈이 물리고 말았으며

'93.10.19일

최재한 선생의 10주기를 맞이하여 후계자인 최효석씨를 당당히 참배시켰으나, 그 역사적인 참배를 본 역원들은 만행이라 규탄('93.11.26일자 역원 내용증명 참조)하게 되었으며, 그 앞날 김*성을 전령으로 참배 여부를 의논하려 보냈으나 매수됨

'94.11.20일

원남성낙성봉고제 때는 저희 부부가 납치 감금되는 사태가 발생(초청장이 없다는 이유로 정문에서 피납)되었는데, 감금자의 말에 의하면 최효석이가 오면 안되는 장소라고 했음,

'96.1.1일

4통의 편지에 의한 신풍은 점화되었으며,

'96.1.22일

최효석은 드디어 1996년의 교조 110년제 때에는 예정된 프로그램대로 최효석씨를 터전에 참배시키는 주선을 완료했으며, 최효석과는 완전히 손을 떼고 역원들에게 맡겨짐

'96.1.25일

본인은 꿈에서도 그리는 터전에 잠잘곳도 없이 모험의 참배를 결행했었으며,

'96.1.28일

손뗀데도 불구하고 최효석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크게 꾸짖으며 단절했으나 다시 전화와서 꼭 전하지 않으면 안될 사정이라며 사정해 와 통화 되었음(내용 : 八木대교회장으로부터 대교회에서 제명되었음을 통보해 왔음, 최정옥씨가 통역했다고 함)

'97.8.17일

최효석은 원남성교회장에 취임하였으나,  

'97.9.22일

각종 오해들을 불식시키고자 감로봉사단 교구로 이첨, 본인 통영 도남동으로 단독포교

'97.9.23일

취임전의 교회 연성회에서의 감화가 문제되어 본인의 사주를 받고 있다고 오해 되어 역원들의 핍박에 그 사유를 따지는 대표(원삼성교회장 강영순씨)를 포교지인 통영 도남동에 데려다 주고 잠적(밤새 술을 먹은 역원 교회장들이 사택을 점거하여 괴롭혔고 근행보고 있는 교회장을 사무실 마이크로 불러서 근행이 중단되는 등의 사고가 생겼다고 함 : 생모에게는 (년)자를 호칭하며 대갱이를 끌어내라고 호통 : 강모씨 증언)

'98.6.30일

신악가 개역판 통과(교회장 연성회 : 강원도 원주)

'98.7.13일

신악가 개역 반대 의견 교회본부 발송

'98.7.17일

번역위원 전원 교체 발표(도우사에서)

'98.10.20일

최효석씨 결혼문제 반대자와 크게 싸우다 회장옹립을 후회하는 말 등으로 또 다시 잠적,(박** 소장(여)으로부터 듣다)

'99.3.5일

김양수씨와 결혼(축시 전달에 실패했음)

'99.6.29일

밀레니엄 화두 발송(국제종교심판소 등 세계 620여 곳)

'99.7.12일

정부에서 신변보호 발동(**경찰서 *** 경사외 4명)

'99.7.24일

책 발간, 아! 오야사마(창조문화사, 허** 著, 값 5000원 교보문고 등 전국 유명서점과 판매계약)

'99.8.8일

교통 배석수씨로부터 아! 오야사마 책 극찬하는 호평받으며, 100권 주문 받음 (경주문화회관의 교화에 인용 및 광고해 주겠다는 전언으로 대학생들에게 30권 증정하였으나 증발됨)

'99.8.28일

아! 오야사마 책 불온서적으로 교단내의 판매금지 통보(오후데사키 등의 발체와 신명(예; 창조神, 아버지神, 어머니神)등의 표기에 문제제기 : 번역위원장 황**)

'99.9.20일

말만 들어온 종교재판의 전횡이라고 할까.
교단으로부터 제명 통보받음(교단 제 99-27호 : 서울 중앙우체국 소인, 내용증명) : (아! 오야사마 책 발간과 국제종교심판소 등에 발송한 '창세기 사용정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의의) - 이에 불응시 포교소 등록을 말소시켜 교단지를 통해 공표하겠음을 교단연석회의(1999년 9월 13일)에서 결의 하였으므로 이에 통보합니다. 끝. 교통 배석수.

'99.9.28일

교단과의 전쟁 선언 내용증명 발송

'99.10.1일

전도청과 교단으로부터 공식 제명 됨(진해 용재 지방강습회 도중 2층에서 전도청장님과 교단 총무원장에 의해 공식 제명 발표 됨)

'99.10.5일

중앙정부의 경찰청과 창원지방법원에 포교소 말소 및 제명정지 가처분 신청(형사·민사)

'99.10.12일

교회본부에 심판회 청구(교단의 주장이 타당하다면 교회본부에서도 제명해 주기 바라는 내용)

'99.10.25일

오지바 노숙 참배(관계자의 면담을 단호히 거절, 심판회의 결정에 따르겠음을 통보)

'99.10.27일

바람을 피해 터전에서 공부하는 최효석에게 역원들의 교회장사퇴를 요구하는 뜻이 전달됨, D교회의 정**씨 (八木 숙소, 일본인 ***로부터 청취)

'99.11.17일

교회본부 특사 방문(제명사건에 대한 해결 건)

'99.12.15일

교통의 공식 사과와 복원(전도청장님과 부산 서라벌 호텔 : 도우지에 공식사과문 게재키로 약속. 관계자와 망년회식 주선 약속 : 이상 불이행)

'99.12.18일

형소 및 민소 취하서 발송

'00.2.18일

어느 교회장으로부터 최효석 잠적 소식 접함,

'00.5.26일

동삼동과 통합모색, 최정자씨 교회장 리 배대하기로 하였으나 무산

'01.1.5일

신바시라(眞柱)와 기념사진, 감격

'02.4.28일

신바시라(眞柱)로부터 직접 어주(御酒)하사 받음, 감격

'01.11.26일

원남성교회를 교회본부에 공식 오소나이 : 천리교 한국전도청으로 활용

'02.7.14일

김해 이전시 당번 및 일체의 공식 히노끼싱 금지 통보 받음

'02.8.1일

www.tenrio.com 홈페이지 출판

'02.10.12일

전도청 이전 및 청장취임봉고제

'03.8.18일

교단게시판에 글쓰기 제한으로 재갈 물림, 문제의 글

.03.9.28일

www.chunrikyo.com 홈페이지 출판

 
위 이전 자료는 추후 발표될 예정임
 

 

그 때의 신풍에 의해 초대의 유지(遺志)는 달성되는 듯 했으나, 진실이 미치지 않은 탓으로 결국 그는 쫒겨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되었던 것이다. 당해 교회장의 생모이자 최재한 선생과 혼인한 부인은 년자 취급을 받으며, 역원들의 결의를 받아 질질 끌리다시피 쫒겨나는 비운을 맞았던 것이다.

초대의 유지를 존중한다면 그가 하고 안하고의 차원에서 논해서는 안된다. 교회장 할 수 있도록 한번 더 봐주겠다는 그런 마음이어서도 안된다. 강화도령이 임금자질이 되어서 철종으로 보위에 앉게 되었겠는가. 응석받이 시골 뜨기일지라도 혈을 찾아 흐르는 그 리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강화도령보다 잘생긴 자가 어찌 없었겠으며, 시골에서 뛰놀던 그가 어찌 곤룡포를 입고 위세를 떨어야하는 용상이 체질에 맞았겠는가.

곤룡포를 벗어 던지고 달아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한 중신들의 충정이 없었다면 어찌 그 자리를 지켜낼 수 있었겠는가. 아직 리에 익숙치 않으므로 그 어머니가 걱정되어 수렴청정(垂簾聽政)이라도 해 주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는가.

그게 얼마만큼 잘못되었길레 대갱이를 끌어내라는 불호령을 들어야만 했을까. 교회장되어 팔자를 고칠값에 아버지가 이룬 교회에서 어머니가 당한 수모를 본 그 심정은 과연 어떠했을까. 이 따위가 뭐가 대단하길레 아버지의 유지를 따라야 한다고 천리를 깨우치려 애쓴 소장님(?)은 무슨 꿍심이라도 있었단 말인가.

이제 최효석은 천리교를 하지 않겠다는 비장한 결의를 굳히고 은둔하고 있는 줄 알고 있다. 그가 절대 교회장직을 맡지 않겠다는 것은 사나이 다운 그의 면모이다. 초대 최재한 선생의 위대한 업적과 유지에 대해, 아니 그분을 팔아가며 신앙하고자 한다면, 그의 은둔 생활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시순의 도래를 간과해서는 안되리라 생각한다.

삼고초려의 정신이 아니라면 그를 움직여 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난 그의 순수한 영혼과 순박한 고집을 익히 아는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어리디 어린 그를 팽개쳐 놓은 불효만도 가이없을진데, 신앙이 있네 없네를 논했다고 하니 참으로 서글프기 짝이 없었다.

솔직히 나도 자식 키우고 있지마는 조석으로 훈계하고 가르쳐도 신앙이 영그는지 걱정이 태산같은데, 팽개친지 그 어느멘데 이제 앉혀놓고 섭정(攝政)은 못할망정 흔들어 제끼다니 말이나 될 법한가 이 말이요.

교회장 안한다고 할까봐 노심초사 마음 졸여도 시원찮을 일인데, 근행 열심히 보고 순서를 밟아 터전에 이어지려하는 것만해도 어느멘데, 천리가 없음인가. 초대의 뜻이 잘못이든가.

돌이켜 생각해 보니, 전부 나의 부덕이 아닌가 생각하니 가슴이 에린다. 개척의 아버지셨던 그 분이 마지막 떠나는 영결식에서 저 어린 후계자를 위해 혼신을 다하리라 맹세했던 말을 왜 내가 했을까.

공증서류1
공증서류2

 

 

1. 희다고 팔다

2. 젊은이의 메아리

3. 담을 헐라

4. 상대적빈곤

5. 부인회비디오

6. 모본문화

7. 사이비

8. 가슴과 입

9. 도덕과 윤리

10. 신앙신념

11. 용재의 가슴

12. 신명과 수호

13. 부부의 연

14. 종교재판

15. 용재와 신상

16. 씨앗을 뿌리려

17. 선배의 출직

18. 천리교수난

19. 휴거

20. 과대포장

21. 편가르기

22. 인연자각

23. 밥상

24. 이합집산

25. 새 대통령

26. 실끝을 찾아

27. 원칙과 기준

28. 인연자각

29. 민족차별

30. 세계의 보물

31. 초대의 길

32. 어느 주례

33. 불신자

34. 후계자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