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희다고 팔다

2. 젊은이의 메아리

3. 담을 헐라

4. 상대적빈곤

5. 부인회비디오

6. 모본문화

7. 사이비

8. 가슴과 입

9. 도덕과 윤리

10. 신앙신념

11. 용재의 가슴

12. 신명과 수호

13. 부부의 연

14. 종교재판

15. 용재와 신상

16. 씨앗을 뿌리려

17. 선배의 출직

18. 천리교수난

19. 휴거

20. 과대포장

21. 편가르기

22. 인연자각

23. 밥상

24. 이합집산

25. 새 대통령

26. 실끝을 찾아

27. 원칙과 기준

28. 인연자각

29. 민족차별

30. 세계의 보물

31. 초대의 길

32. 어느 주례

33. 불신자

34. 후계자의 길

 

       
희다고 팔고 있어도
                                                         立敎 166(2003)年 9月 28日

몇 년에 걸쳐 도우에 칼럼을 투고해온 원풍포교소장 탁상희씨의 글은 1993년 9월호에 실린 위의 글을 끝으로 [희다고 팔고 있어도]는 더 이상의 빛을 발하지 못하고 정지 되어 버린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과연 원풍포교소장 탁상희 그는 누구일까. 그리고 왜 그의 글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신세가 되었을까. 아마 글을 관심깊게 보아온 사람은 벌써 그 뜻을 짐작했으리라 생각된다.

'93 EXPO가 열린 해, 5월이라 기억된다. 부산 양정동에 있던 도우사는 예고도 없이, 이사가 단행되었다. 젊은이들이 도우사를 근거지로 모반을 기획하고 있다고 하여 그 주동자들은 축출(?)되고 새로운 시대가 열렸던 것이다.

희다고 팔고 있어도는 그 시대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도전이었다. 국장 부장께 근신할 것을 요구해도 끄덕도 않고 은어를 뱉아내고 있으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인사 단행이 아니라 파격적으로 장소를 옮겨 새 시대를 준비하였는데도, 오히려 탁상희의 모험은 끝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공개적으로 글을 쓸 수 없게 할 수도 없었는데, 탁상희는 베일에 쌓여 있었던 것이다. 과연 누구일까, 그들의 숙제의 답을 물어오길레그 자가 바로 '나'라고 대답했다. 보낸 원고가 실리지 않아 안부를 물었더니, 오부장(?) 왈 '고위층의 지시'로 인해 앞으로 글을 쓸 수 없게 되었다는 전언이었다.

참으로 끈질긴 투혼을 다한 글이 게재되곤 했다. 석재호가 들통나자 과감히 원풍포교소장 탁상희로 둔갑(?)하여 면면히 이어져오다가 초대 최재한 선생의 10주기를 앞두고 그 전모가 탄로나게 되었고, 그 이름도 사라지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김홍대님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했었다.

元風! 탁상희!
원남성에 새 회오리 바람을 몰고올 元風! 그 이름은 다시 나타날 수 없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원풍의 바람은 아직도 끊이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가 원남성초대이신 최재한 선생의 20주기를 앞두고 새로운 원풍을 예고하고 있으니, 그 귀추가 주목되지 않을 수 없다.

'93.5.6일

부산 양정동 도우사는 젊은이들의 항명에 마산으로 이전하게 되었고

'93.9월

젊은이의 용기와 기백을 믿고 이 길의 젊음을 깨우기 위해 온 몸을 던졌으나 아무도 그 받침이 되지 못한 채, 그나마 혼을 깨우리라 기관지인 도우를 통해 발표되어오던 [희다고 팔고 있어도]는 자갈이 물리고 말았으며

'93.10.19일

최재한 선생의 10주기를 맞이하여 후계자인 최효석씨를 당당히 참배시켰으나, 그 역사적인 참배를 본 역원들은 만행이라 규탄('93.11.26일자 역원 내용증명 참조)하게 되었으며, 그 앞날 김*성을 전령으로 참배 여부를 의논하려 보냈으나 매수됨

'94.11.20일

원남성낙성봉고제 때는 저희 부부가 납치 감금되는 사태가 발생(초청장이 없다는 이유로 정문에서 피납)되었는데, 감금자의 말에 의하면 최효석이가 오면 안되는 장소라고 했음,

'96.1.1일

4통의 편지에 의한 신풍은 점화되었으며,

'96.1.22일

최효석은 드디어 1996년의 교조 110년제 때에는 예정된 프로그램대로 최효석씨를 터전에 참배시키는 주선을 완료했으며, 최효석과는 완전히 손을 떼고 역원들에게 맡겨짐

'96.1.25일

본인은 꿈에서도 그리는 터전에 잠잘곳도 없이 모험의 참배를 결행했었으며,

'96.1.28일

손뗀데도 불구하고 최효석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크게 꾸짖으며 단절했으나 다시 전화와서 꼭 전하지 않으면 안될 사정이라며 사정해 와 통화 되었음(내용 : 八木대교회장으로부터 대교회에서 제명되었음을 통보해 왔음, 최정옥씨가 통역했다고 함)

'97.8.17일

최효석은 원남성교회장에 취임하였으나,  

'97.9.22일

각종 오해들을 불식시키고자 감로봉사단 교구로 이첨, 본인 통영 도남동으로 단독포교

'97.9.23일

취임전의 교회 연성회에서의 감화가 문제되어 본인의 사주를 받고 있다고 오해 되어 역원들의 핍박에 그 사유를 따지는 대표(원삼성교회장 강영순씨)를 포교지인 통영 도남동에 데려다 주고 잠적(밤새 술을 먹은 역원 교회장들이 사택을 점거하여 괴롭혔고 근행보고 있는 교회장을 사무실 마이크로 불러서 근행이 중단되는 등의 사고가 생겼다고 함 : 생모에게는 (년)자를 호칭하며 대갱이를 끌어내라고 호통 : 강영순씨 증언)

'98.6.30일

신악가 개역판 통과(교회장 연성회 : 강원도 원주 번역위원장 : 조덕구, 개역책임자: 안영길 선생)

'98.7.13일

신악가 개역 반대 의견 교회본부 발송

'98.7.17일

번역위원 전원 교체 발표(도우사에서)

'98.10.20일

최효석씨 결혼문제 반대자와 크게 싸우다 회장옹립을 후회하는 말 등으로 또 다시 잠적,(박** 소장(여)으로부터 듣다)

'99.3.5일

김양수씨와 결혼(축시 전달에 실패했음)

'99.6.29일

밀레니엄 화두 발송(국제종교심판소 등 세계 620여 곳)

'99.7.12일

정부에서 신변보호 발동(**경찰서 *** 경사외 4명)

'99.7.24일

책 발간, 아! 오야사마(창조문화사, 허** 著, 값 5000원 교보문고 등 전국 유명서점과 판매계약)

 '99,8.8일

 表統領 이브리마사히코선생으로부터 [아! 오야사마] 책 극찬  격려 편지

'99.8.8일

교통 배석수씨로부터 [아! 오야사마] 책 극찬하는 호평받으며, 100권 주문 받음 (경주문화회관의 강화에 인용 및 광고해 주겠다는 전언으로 대학생들에게 30권 증정하였으나 증발됨)

'99.8.28일

[아! 오야사마] 책 불온서적으로 교단내의 판매금지 통보(오후데사키 등의 발체(개역되기 전의 것을 사용한데 대한 것과 神名 등에 대해 -(예; 창조神, 아버지神, 어머니神)등의 표기에 문제제기 : 번역위원장 황봉철)

 '99.9.13일

 아르헨티나 신양기선생으로부터 [아! 오야사마] 책 극찬 편지

'99.9.20일

교단으로부터 제명 통보받음(교단 제 99-27호 : 서울 중앙우체국 소인, 내용증명) : (아! 오야사마 책 발간과 국제종교심판소 등에 발송한 '창세기 사용정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의의) - 이에 불응시 포교소 등록을 말소시켜 교단지를 통해 공표하겠음을 교단연석회의(1999년 9월 13일)에서 결의 하였으므로 이에 통보합니다. 끝. 교통 배석수.

'99.9.28일

교단과의 전쟁 선언 내용증명 발송

'99.10.1일

전도청과 교단으로부터 공식 제명 됨(진해 용재 지방강습 회 도중 2층에서 전도청장님과 교단 총무원장에 의해 공식 선언 발표 됨)

'99.10.5일

경찰청과 창원지방법원에 포교소 말소 및 제명정지 가처분 신청(형사·민사)

'99.10.12일

교회본부에 심판회 청구(교단의 주장이 타당하다면 교회본부에서도 제명해 주기 바라는 내용)

'99.10.25일

오지바 노숙 참배(관계자의 면담을 단호히 거절, 심판회의 결정에 따르겠음을 통보)

'99.10.27일

바람을 피해 터전에서 공부하는 최효석에게 역원들의 교회장사퇴를 요구하는 뜻이 전달됨, D교회의 정**씨 (八木 숙소, 일본인 ***로부터 청취)

'99.11.17일

교회본부 특사 방문(제명사건에 대한 해결 건)

'99.12.15일

교통의 공식 사과와 복원(전도청장님과 부산 서라벌 호텔 : 도우지에 공식사과문 게재키로 약속. 관계자와 망년회식 주선 약속 : 이상 불이행)

'99.12.18일

형소 및 민소 취하서 발송

'00.2.18일

어느 교회장으로부터 최효석 잠적 소식 접함,

'00.5.26일

동삼동과 통합모색, 최정자씨 교회장 리 배대하기로 하였으나 무산

'01.1.5일

신바시라(眞柱)와 기념사진, 감격

'02.4.28일

신바시라(眞柱)로부터 직접 어주(御酒)하사 받음, 감격

'01.11.26일

원남성교회 교회본부에 공식 오소나이 : 천리교 한국전도청으로 활용

'02.7.14일

김해 이전시 당번 및 일체의 공식 히노끼싱 금지 통보 받음

'02.8.1일

www.tenrio.com 홈페이지 출판

'02.10.12일

전도청 이전 및 청장취임봉고제

'03.8.18일

교단게시판에 글쓰기 제한으로 재갈 물림, 문제의 글

.03.9.28일

www.chunrikyo.com 홈페이지 출판

 

 

 

그 때의 신풍에 의해 초대의 유지는 달성되는 듯 했으나, 진실이 미치지 않은 탓으로 결국 그는 쫒겨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되었던 것이다. 후계자의 생모이자 최재한선생과 혼인한 부인은 년자 취급을 받으며, 사택에서 쫓아 내는 결의까지 하게 된 사태가 되었던 것이다.

초대의 유지를 존중한다면 그가 하고 안하고의 차원에서 논해서는 안된다. 교회장 할 수 있도록 한번 더 봐주겠다는 그런 마음이어서도 안된다. 강화도령이 임금자질이 되어서 철종으로 보위에 앉게 되었겠는가. 응석받이 시골뜨기일지라도 혈을 찾아 흐르는 그 리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강화도령보다 잘생긴 자가 어찌 없었겠으며, 시골에서 뛰놀던 그가 어찌 곤룡포를 입고 얌전 떨어야하는 용상이 체질에 맞았겠는가.

곤룡포를 벗어 던지고 달아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한 중신들의 충정이 없었다면 어찌 그 자리를 지켜낼 수 있었겠는가.

이제 최효석은 천리교를 하지 않겠다는 비장한 결의를 굳히고 은둔하고 있는 줄 알고 있다. 그가 절대 교회장직을 맡지 않겠다는 것은 사나이 다운 그의 면모이다. 초대 최재한 선생의 위대한 업적과 유지에 대해, 아니 그분을 팔아가며 신앙하고자 한다면, 그의 은둔 생활에 종지부를 찍도록 성과 실을 다해야 될 줄 믿는다.

삼고초려의 정신이 아니라면 그를 움직여 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난 그의 순수한 영혼과 순박한 고집을 익히 아는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어리디 어린 그를 팽개쳐 놓은 불효만도 가이없을진데, 신앙이 있네 없네를 논했다고 하니 참으로 서글프기 짝이 없었다.

솔직히 나도 자식 키우고 있지마는 조석으로 훈계하고 가르쳐도 신앙이 영그는지 걱정이 태산같은데, 팽개친지 그 어느멘데 앉혀놓고 흔들어 제꼈으니 말이나 될 법한가 이 말이다.

교회장 안한다고 할까봐 노심초사 마음 졸여도 시원찮을 일인데, 근행 열심히 보고 순서를 밟아 터전에 이어지려하는 것만해도 어느멘데, 모지고 독한 바람 피하여 터전에 가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거기까지 찾아가서 쫓아낼 게 뭐란 말인가.

'절대로 당신같은 사람을 교회장으로 받들 수는 없다. 이는 나의 생각만이 아니다.' '저는 천리교를 잘 몰라 이제 배우고 있는 중이니, 30년 넘은 선생의 신앙으로 좀 도와주면 안되겠습니까?'

천리교교회본부! 신님이 진좌해 계시는 이 곳에서 문둥이 아버지가 감격하신 그 날을 되새기며 '어쨌든 훌륭한 교회장이 되어 아버지의 명성을 더럽히지 않으려 결심하며 마음을 다지며 공부하였다.

'굳이 학생은 아침근행에 참배하지 않아도 되건만 터전생활중 단 하루도 이를 거르지 않았는 줄 알고 있다. 시간이 있어 도서관에 들리면 반드시 최효석씨가 있었다'는 그 학생은 눈시울을 적시며 참 순진한 분이시라며 안타까워 했다.

어느 날 터전에서 그를 만난적이 있었다. '소장님, 훌륭한 교회장이 되려면 신악가를 용솟음치게 불러야 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대교회의 뒷산에 올라가 목을 틔우는 연습을 했습니다'고 한 적이 있었다. 참으로 훌륭한 교회장이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임을 그의 말을 듣고 깨닫게 되었다.

1999년 10월 27일!
새천년 밀레니엄을 앞두고 마지막 보낸 추계대제의 감격이 채 가시지 않을 즈음 그는 글로써는 표현하기 위협적인 닥달에 힘을 잃고 주저 앉고 말았던 것이다. 한번도 빠진 적이 없었던 근행시간에 일어날 기력조차 없이 눈물과 한숨으로 지새는 날이 계속되었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데 교회장의 자리가 탐이나서 앉아 있다는 것은 정말 죄송한 일이다. 정말 아버지가 해 놓으신 일들이 이렇게 가치없는 것이었을까를 생각하니 복받쳐 흐르는 눈물에 찢어지는 듯한 가슴을 스러내리며 굳은 결심을 하였던 것이다.

죽어도 리를 지키려 했었건만, 먹을 것 입을 것 얘들 공부도 걱정없이 해 줄 것이라며 역원신자들께 누누히 일러두었다며 애써 젊으신 어머니를 타일러 주신 노환의 아버지는 왜 나를 낳아 이런 수모를 당하지 않으면 안될까.

좋은 사람 만나 재혼해도 충분히 잘 사실 수 있을 어머니는 대갱이를 끌어내라는 수모를 당하고 질질 끌리듯이 쫓겨나지 않으면 안되었으며 이 눈치 저 눈치를 보면서도, 아버지의 말씀이니 틀림없다고 하셨을까.

'내가 회장님의 자식을 낳는 소원을 풀어드릴 수는 있습니다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겁니다'고 하니 '나와 똑같이 생긴 아들이니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라며 작수성례를 올리고, 혼인신고까지 손수해 주신 아버지의 뜻은 정녕 무엇이었을까.

맡겨졌던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많은 교신자들을 괴롭혀 온 자신의 과오를 되돌아보며, 훌륭한 교회장으로서의 자질과 품격을 높이기 위해 각고해 온 모든 것이 아무런 가치도 없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다. 아버지가 혼신을 다해 이룬 원남성은 나의 것이 아니다. 내가 교회장에 집착한다는 것은 욕심일지도 모른다. 당한 수모들을 떠올리자 더욱 회한에 찬 눈물이 가슴을 에러왔지만 결단의 명수의 아들답게 교회장 사직서를 쓰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 아버지가 남기신 유지의 법적 효과는 없어졌다. 죽어도 넌덜머리가 나는 천리교는 안할 것이다. 굳은 결심 또한 확고했을 것이다.

차려준 밥상도 마다하고 도망갔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정녕 그가 쫓겨난 것일까. 도망간 갔을까.

칼로 죽인다고 해도 그 자리를 지켰어야지요. 참으로 말은 간단한 것 같다. 쫓겨났든 도망갔던 그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진실로 깨달음이 충만하다면 그가 돌아오게 만들어야 한다. 그가 오지 않고서는 참으로 용솟음치는 역사는 요원하지 않겠는가.

그것은 초대 최재한 선생의 깊은 뜻이 말살되지 않는 한 영원할 것이며, 그 뜻을 말살하려는 자들이 아닌 이상 혼의 깊숙한 곳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점으로 남아, 양심의 가책으로 견딜 수 없는 업보가 도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무렵 본인은 교묘한 술수에 휘말려 제적당하는 수모를 겪고 지바를 노숙 참배 하였다. 분명 사라지고 없어졌어야할 빈데머리같은 그와 내가 살아남아 그들의 꼭대기에 군림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견딜 수 없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우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리라.

 

立敎 166(2003)年 9月 28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