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2. 밀항선

3. 유치장에서

4. 생장   

5. 나병(문둥병)

6. 병력과 전과력

7. 기이한 인연

8. 암흑의 수렁

 9. 악에 강한자

10. 악전침대

11. 첫참배

12. 교회의 사정

13. 수양과에서

14. 교회생활

15.경찰에 잡혀

16. 인연과의 전쟁

17.마디를 딛고

18. 포교소설립

19. 봄은 오다

20. 일진강풍

22.고국을 향해

23. 고성·충무교회

24.시험과 박해

25. 박해와 통합

26. 나심

27. 지바를 흠모

28. 에필로그

병력과 전과력 

[나의 20대에서 30대에 걸쳐 치고 받은 싸움 상대는 몇 백명이었는지 기억도 못하고 낱낱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습니다. 나는 선수치는게 빠르고 그것도 보통 솜씨가 아니니 상대는 반드시 기가 죽어 버립니다. 진 일은 한번도 없습니다. 저 사람은 항우만큼 세다든가 저 몸은 사람을 몇이나 죽이고 형무소를 몇 번 드나들었는지 모르는 전과자니 상대하지 말아라 하는 충고를 들어도 남들의 소문을 그대로 들어넘기는 따위는 안했습니다. 상대와 한판 붙어보고 겨루어 보지 않고는 모르는 겁니다. 내가 확인할 때까지는 소문을 듣고 상대의 실력을 인정하는 일은 없었습니다.]고 이야기 한다.

저 사람은 주먹이 세어서 저 사람 앞에서는 초목도 벌벌 떤다고들 어느 사람을 두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최재한이는 면식도 없는 그 사람에게 다가가서 불과 5척 남짓의 단구(短軀)를 높여 갑자기 상대의 얼굴을 손 바닥으로 훑어 버린다. 자그맣고 재빨라 보이는 몸과는 천양지간인 매서운 인상이 표현키 어려운 살기를 느끼게 한다. 그 특유의 무서운 눈매도 예사롭지가 않다. 그리하여 상대의 얼굴을 훑어 내리자마자 숨소리가 들릴만큼 바짝 다가서서는 [이봐! 나하고 한판 붙어 볼래?!]하며 예리한 비수로 창자를 찌르는 듯이 동갈( 주3) : 을러대며 위협하는 것)한다.

그럴 때의 그의 눈은 호랑이나 표범이 먹이를 보고 덤빌 때의 눈 그것이다. 맹열한 위압감이 넘쳐 그저로는 넘어가지 않을 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갖고 태어난 만용의 혈맥과 수라장을 쏘다니며 단련한 처절한 위혁(威)이다. 문신(文身)이나 칼자욱을 자랑하는 웬만한 깡패라도 그의 협박을 당하면 열명 가운데 아홉명까지는 겁을 먹고 굴복(屈伏)한다.

어쩌다 허세를 부리고 대항하려는 자라도 있는 날이면 가차없이 품안의 비수가 상대의 옆구리를 꾹 지르려 한다.[아~ 아 알았습니다. 형님....!]하고 손을 들어 버리면 그것으로 끝나지만 [뭐! 이 새끼가 ...]하고 덤비게 되면 피바다를 이루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최는 한번도 살인을 범한 적은 없다. 다만 살인미수로 체포되어 후송도중 탈출한 사건이 그를 더 이상 일본에 머물 수 없게 된 동기는 되었지만 -, 상대를 굴복시키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그 한도를 분별했다. 그렇다고는 하나 피를 볼 정도의 싸움이 벌어지면 경찰이 움직인다.

[그 따위 짓만 하고 다녔으니, 얼마나 경찰의 신세를 졌는지 모릅니다. 내집 드나들 듯이 신세를 졌고 형무소 살이도 심심찮게 했습니다.]

병력(病歷)과 전과력(前科歷)은 참으로 화려하다. 땅속으로 꺼져 내려갈 듯한 절망이 날로 깊어지는 가운데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의 암영에 협박을 받으면서 암담한 운명을 튕기기나 하듯 그의 행적은 거치러질 뿐이었다.

깡패는 자신이 못돼 먹은 인간인 줄은 누구보다도 자기가 먼저 알고 있다. 자신의 삶에 자신이 없다. 인간으로써 부족한 점 결함되는 점을 보충하기 위하여 도당(徒黨)을 만들고, 폭력이나 흉기에 의지한다. 그럴수록 더 세인의 지탄을 받게 된다. 지탄을 받으면 받을 수로 더 악해진다. - 이러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으나 재한이는, 조직이나 도당의 패거리에 드는 일은 끝내 없었다. 타인이나 조직의 힘에 의지하려 하지 않고 항상 외로운 한 마리의 늑대로 악명을 드높였던 것이다.

1930년대부터 40년대의 후반에 걸쳐 최재한이가 신문 사회면에 악당으로써 등장한 회수는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형사범으로 쫓기는 자포자기의 행적은 일상 다반사였다고 한다. 그가 돌이킬 수 없는 악의 세계에 투신한 요인은 직접적으로 청춘기에 발생한 나병의 충격에 의한 바가 컸겠지만 그 밖에도 몇가지 별근을 안고 있어 그런 것이 집중하여 그의 몸을 난도질한 것이 30대에 들 무렵부터였다.

그는 소년시절부터 위가 나빠서 약을 많이 복용하고 있었는데 청년기의 x레이는 제법 큰 덩어리가 위의 하부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 게다가 결핵군에도 침범을 당하고 폐의 절반은 기능을 잃었었고 항문에는 갓난 아기 주먹만한 치핵이 생겼었다. 배설할 때는 앞이 캄캄해질 듯한 아픔을 생각하면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고 더군다나 피고름이 섞여 나오는 성병마저도 갖고 있다는 실로 화려무쌍한 병력이 몇겹이나 쌓여 아침 저녁으로 참지 못할 아픔에 신음했었다.

그 고통이 극에 달한 것이 1947년 여름 그가 36세되던 때였다. 소화기 계통과 호흡기관이 일찍부터 탈이 났었는데다가 나병이 이에 추격을 가해왔다는 것이 실정이리라. 만신에 병균을 가득안은 누더기 같은 몸으로 어쩌면 그렇게 민첩하게 악업을 쌓을 수 있었을까. 출중한 기력과 담력이 시키는 것이었을까.

그동안 재한이는 전후 세 번 병구를 이끌며 고국에 돌아간 일이 있다. 고국이라곤 하나, 당시의 한국은 일제(日帝)의 통치하에 있었다. 첫머리에 그의 귀국은 28년만이라 적었으나 그것은 기술(記述)의 편의상 도중의 일시적인 귀국은 생략한 것이다. [내선인(內鮮人)이란 호칭으로 멸시 당하여 어차피 일본국내에서의 진료에 불신을 갖게 된 그는 무리를 무릅쓰고 조국의 동족 의사에게 일루의 희망을 걸어 치료를 요청했던 것이나 그 결과는 모두 허사로 돌아갔다. 어두운 절망속에서 악행의 극을 달려온 반면, 어떻게 해서라도 남들처럼 건강한 몸이 되어야겠다는 흙투성이의 집념을 끊임없이 태워온 소식의 편영(片影)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