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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생의 모험자 최재한 그 -25  
박해와 통합
보스의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던 선생이셨다.  

1. 프롤로그

2. 밀항선

3. 유치장에서

4. 생장   

5. 나병(문둥병)

6. 병력과 전과력

7. 기이한 인연

8. 암흑의 수렁

 9. 악에 강한자

10. 악전침대

11. 첫참배

12. 교회의 사정

13. 수양과에서

14. 교회생활

15.경찰에 잡혀

16. 인연과의 전쟁

17.마디를 딛고

18. 포교소설립

19. 봄은 오다

20. 일진강풍

22.고국을 향해

23. 고성·충무교회

24.시험과 박해

25. 박해와 통합

26. 나심

27. 지바를 흠모

28. 에필로그

 

 

 

박해와 통합

천리교에다가 나라의 이름을 얹어 <대한천리교>라 칭하게 된 것은 일본에서 건너온 천리교가 아니라는 의미를 뒷받침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소위 "일제암흑시대"인 1938년 내선일체(內鮮一體)라는 명목으로 황민화(皇民化)운동이 추진되어 [우리는 대 일본제국의 신민이다. 우리는 마음을 맞추어 천황폐하에게 충성을 다한다]는 서문을 강제 당하기도 했다. 게다가 모국어 사용금지 창씨개명(創氏改名)과 일본어 강제교육, 그리고 각 가정에는 [아마데라스고오다이진구우(天照皇大神宮)라는 신부(神符)를 붙였고 학교나 직장에서는 일본식 신사(神社)에 강제참배를 시켰다. 조상전래의 성(姓)과 언어를 박탈당하고 민족으로써 최대의 굴욕이 가해진 것도 당시를 아는 한국인으로써는 뼈에 사무쳐 잊을 수 없는 일이다.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발상한 천리교가 신도의 일파로 간주되고 일본 국체주의를 표방하는 사상침략의 앞잡이라 하여 맹렬한 배격운동에 시달린 것은 전후(戰後)의 일이다. 남의 발을 밟은 사람은 아픔을 몰라도 밟힌 사람은 아픔이 남는다. 가해자의 흙발에 묻은 흙은 그 흔적을 빨리 씻어 없애려는 강력한 내쇼날리즘이 되어 발흥(勃興)해 가고 있었다.

그 반면,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하여 정부요인에도 그리스찬이 있었고 특히 남북동란후는 카톨릭교단이 국토부흥에 공헌하여 교당, 의료시설 등의 구축에 아낌없이 자금을 투입했다. 상대적으로 천리교는 위축되었다는 사정도 있다. 초등하교 중학교 교사에도 기독교 신자가 많기 때문에 천리교는 민족지배의 종교이니 신앙해서는 안된다고 교단에서 그렇게 가르친 시기도 있었다. 크리스찬이 아니고서는 출세할 수 없는 풍조가 일반화하여 특히 동란후는 미국의 영향이 강해졌다. 어떤 시골에도 기독교회와 다방이 없는 곳이 없다고 신문에서 비방한 것도 그 무렵이다.

카톨릭이 재빨리 포교공인을 취득한데 반해서 같은 동양에서 발생한 천리교는 일제지배의 연장이라는 이유가 붙여져 피해 다니면서 포교에 심신을 기울인다는 참으로 형언키 어려운 시기에 최재한이가 귀국해서 일본어로 天理王命의 신명을 유포(流布)하고 일본어로 12장의 근행을 감행했다. 반일주의자들의 집단폭행을 받은 일도 없었고 잡히지도 않았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이다.

그가 주재하는 영도교회의 문전에는 매일 아침 일찍부터 많은 참배자로 붐볐고, 좌측이니 우측이니 하는 통행구분도 없어질 정도였다. 세상의 비난공격을 아무리 받아도 그 저항을 웃도는 어버이신님의 수호에 이끌려 오는 것이다. 경찰에서는 거기에 눈을 집중하여 통행구분을 지키지 않은 신자를 마구 연행했다. 특히 저녁 근행시간에 기습을 받았다. 교통취체라는 명분으로 하는 참배 방해이다. 그 가운데는 근행후에도밖에 나가기가 무서워서 교회에서 자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일본에서의 천리교 초창기와 흡사한 사태라 할 수 있었다.

그 무렵부터 교리의 번역이 문제화 되기 시작했는데, 자료가 전무상태이므로 한국 천리교의 간부들은 그 문제로 심신이 고달팠다. 교리번역은 중대한 사업이다. 특히  [신악가] 번역에는 공을 많이 들였다고 한다. 한글로 번역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일본어로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국가가 허용하지 않으므로 간부들은 진지하게 논의했다. [오후데사키 : 친필]는 물론 [신악가]도 초국가주의라 하여 제 2차 대전중에 일본 정부 마저도 주요 부분의 삭제를 강요한 일이 있었던 것이다. 전편을 한국어로 번역하기란 난제중의 난제였다.

그 중에서도 유독 최재한은 번역을 반대했다.
[이걸 일본말이라 생각하니까 각국 말로 고쳐야 된다는 이유가 생기는 거야, 이건 일본말이 아니다. 신님의 말이야. 이대로에서 신님의 의도가 알 수 있도록 인간이 공부하면 되는 거야.]
인간생각에서 훨씬 떠나 너무나도 훌륭한 견식이긴 하나 그렇게 안되는 것이 인간사회인 것이다. 다년간의 고심과 영지(英知)를 기울여 한국어판 [신악가]는 드디어 완역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이야기는 조금 순서가 바뀌지만 최재한이의 포교의 성과가 부산의 영도교회로 이룩된 것이 1957년, 4년 후에는 3500평방미터의 토지를 구입하여 이전 건축하여 남성교회라 개칭하고 그로부터 3년 후인 1964년에는 <대한천리교 총본부 교통>에 추대되어 취임했다. 맨몸 하나로 귀국해서 9년째 그가 53세 되던 해이다.

그에 앞서 진해시 여좌동에 <대한천리교 연합회>의 본거를 창설하게 되었다. 각처에 흩어져 있는 계통이 다른 교회·포교소를 한군데의 구심점으로 통합하여 단결을 강화하고 대사회적으로도 확고한 자세를 갖추려고 하는 의도에서 비롯된 이 움직임은 몇몇 원로교회장들이 모여서 협의를 거듭한 결과의 것이었다. 연합회 초대 회장으로써 신자들이 보는 최적임자는 최재한이었다. 그러나 그는 원로들의 일치한 추거(推擧)에 사의를 표했다.

[나는 도저히 그것을 맡을 만한 그릇이 못됩니다. 입으로 점잖게 말하고 나서 모르는 척하고 있을 수 있는 인간이 못됩니다. 나는 무리입니다. 게다가 귀국한지도 얼마 안되고 또 아직도 기반도 약하니까 그런 중책을 맡을 수는 없습니다.] 설마 자기에게 화살이 돌아올지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에 택도 없는 일이라 하여 사퇴를 고집했으나 몇 번이나 재고할 것을 요청하는 재촉이 있었다. 웃사람 되는 데에 중요한 것은 재(才)가 아니고 성(性)인 것인다.

그는 은근한 대접을 받은 후 또다시 수락할 것을 요청 받았으나 역시 적임이 아니라면서 거절했다. 그날은 밤도 늦었으니 모두가 진해교회에서 자기로 했다. 그런데 재한이가 자리에 들자말자 갑자기 복통이 있어 설사를 심하게 했다. 변소와 침실 사이를 몇 번이나 왕복하는 동안 모두 다같이 같은 음식을 먹었는데 하필이면 자기 혼자만이 설사를 하는가. 이것은 틀림없이 신님의 독촉일 것이라 깨달았다. 거짓말인 듯 설사는 멈추었다.

다음날 아침 재한이는 연합회장의 취임을 수락하고 일단 부산으로 돌아가 식량과 취사도구 일체 작업용구와 필요한 히노끼싱 요원 몇몇을 이끌고 우선 신전 역사에 착수했다. 너무도 갑작스런 일에 모두들 아연했으나 그가 직접 지휘하는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어 얼마후에 준공되었다. 최 특유의 배짱의 역사였으나 빚도 상당히 남았다. 그는 빚에는 아랑곳없이 신전 건축의 여세를 몰라 강당과 기숙사 건축도 잇따라 해치우자고 제의했다. 대다수 사람들은 반대를 표명했다. 신전 건축의 빚도 걸머진 채 다음 역사에 착수한다는 것은 너무도 무모한 일이다. 다시 기회를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강하게 나왔다.

[내 의견에 반대할 것 같으면 왜 나를 연합회장 자리에 앉혔나요, 교회 역사는 신님께서 해 주시는 거요. 인간이 하는 것은 아닌데 왜 인간생각을 섞어 넣는가요.]
그는 노성(怒聲)을 터뜨리며 반대의견을 설득시켰다. 그 기세에 억눌려 소극파들은 조용해졌다.

그날이었다. 저녁나절,
신자 두사람이 축하차 참배와서 165만원이나 되는 거액을 봉상했다.
이리하여 강당과 기숙사도 멋지게 완성을 보게 되었다.
1959년 3월, 연합회장에 취임한지 9개월 째였던 일이다.

전국에 산재하고 있는 각 교회·포교소가 하나로 연합하여 [대한천리교]라 칭하여 교세가 날로 발전해 가자 그 현저함에 주목하여 정부의 간섭이 시작되었다. 제사의 방식, 교회, 근행 등 세세한 때까지 난점을 열거하여 내무차관 통달로써 천리교를 반국가적 반민족적 종교로 몰라 세웠다. 저널리즘은 즉시 이것을 보도꺼리로 하여 논란했고 경찰은 포교를 취체하는 등 고난의 길은 자꾸만 계속되었다.

최재한은 대한천리교 총본부 교통이므로 최고간부 7명과 함께 중앙청 내무부에 호출 당하여 차관으로부터 직접 취조를 받았다. 당시의 내무차관(주: 김득관)은 크리스찬으로써 천리교를 원수만큼이나 생각했던 사람이다. 다른 교회장들이 차관의 질문에 대하여 일일이 합법적인 설명을 시도하려는데 그와는 반대로 교통인 최재한은 언제나 엉뚱한 설교를 차관에게 들이대었다.

[당신은 정부의 높은 자리에서 우리들이 갖고 있는 신앙에 낱낱이 이유를 걸고 괴롭히려는 모양인데, 이 신님은 하필 일본 사람에게만의 신님은 아닙니다요. 한국사람의 어버이이기도 하고 또 전 세계의 어버이이기도 하십니다. 우리들의 몸뚱이는 신님께서 빌려주신 것으로 물·불·바람의 수호가 없다면 하루도 살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차관님, 당신 몸뚱이도 한가집니다. 어버이신님께서 보시면 똑같은 자녀입니다. 자식끼리 아무것도 아닌 걸로 이러쿵 저러쿵 싸우고 있으면 부모한테 걱정을 끼칠 뿐이지요. 이 신님의 덕택으로 숨결 한줄기의 수호를 받고 있는데 그 신님의 길을 방해하거나 하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겁니다.]

격앙(激昻)해지면 설교가 질책(叱責)이 되고 그 질책이 발전하여 협박으로 변하거나 하여 어느 쪽이 호출 당한 것인지 분간할 수 없는 사태로 진전되는 것이 일쑤였다.

어느 날은 소환해 놓고
[당신들은 일본 국조신을 숭배하고 있는데 부끄럽다고 생각 않소!]
국조신이란 신명(神名)을 두고 말한 것이다.
재한은 대노하여
[뭐라고요! 수화풍이 일본신이요! 이건 세계의 신님이요. 인간의 부모신이요!]
하고 외치며 도도히 연설을 시작했다.

내무차관은 훗날 측근에게
[최재한이란 사람은 순수한 신앙자다.]고 했다는데 순수한만큼 흥분하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무서운 일면도 있다. 재한이에게서 가장 많이 얻어맞고 주먹으로 교리를 배워온 심복인 역원이 그 버릇을 너무도 잘 알기에 내무부 출입에서 돌아오면 서부극을 보러 간다고 했다고 한다. 멋진 건맨들의 속시원한 장면을 보고나면 한동안은 조용해진다는 소년다운 단순함이 이 사람에게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수행하여 따라간 간부들은 눈살을 찌푸리고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하고 또 내무차관의 마음을 걱정시키기도 하여....,
[교통님이 출두하시면 오히려 될 일이 안되어요.]
할 정도로 그의 태도는 고자세였다.
[걱정하지 마소! 고산전도야. 신님의 이야기를 하는데 무슨 체면이 필요한가.]
간부들로부터 충고를 받으면 의연히 한마디 하고는 일보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의 의중은 신자를 만든다든가 교세를 키운다든가 하는 그런 "장사끼"는 전연 없다. 으뜸인 신의 이야기를 세계의 모든 사람에게 들려 주어야 한다는 일념이 있을 뿐이었다.

소환이 거듭되어,
그 때마다 엄중한 규제를 강요받아 [천리왕명(天理王命)]의 명(命)은 일본 국조신의 "미코도"와 통하는 것이니 창송해서는 안된다고 억압받기도 했다. 간부들 가운데서는 차제에 한국교단을 구제하기 위하여 나무 천리대왕으로 개칭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제안도 있었다. 일찍이 본부에서도 [천리대신]이라 가칭했던 시기도 있었기 때문에 허락될 수 있는게 아니냐 하는 제의가 있었으나 재한이는 단호히 일축했다.

[그건 안돼! 오야사마가 가르쳐 주신 것을 이쪽 형편대로 멋대로 고친다는 것은 다른 종파를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는 짓이다. 애비 어미의 이름을 자식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건가!]

만약 그가 없었다면 한국의 천리교는 신명도 교의도 아마 원형을 찾지 못할만큼 변천해 졌을 것이다.
내무 당국과의 격심한 응수는 수차 거듭되었으나 좀처럼 타결을 보지 못했다. 이러던 중에 경남지방 출신의 국회의원으로 천리교의 활동에 호감을 갖는 사람이 있어서 내무부차관에게 은밀히 충고를 한 것 같다고 한다.
[ - 최재한은 천리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예사롭지 않았던 사람으로 일제시대부터 그쪽 경찰을 상대로 악명을 떨친 사람이었다는 정보가 있다. 당신은 정부 요인의 입장에서 하고 있는 것이지만 저 사람은 천리교 신앙에 목숨을 건 입장에서 와 있다. 아마 일보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너무 따지면 결국 당신한테 좋지 않은 일이 있을지 알 수 없으니 - ]
이 풍문은 돌고 돌아 재한이의 귀에 들려왔다. 그는 쓴 웃음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최후의 소환에 따라 출두했을 때 이외로 부드러운 분위기로 부분적인 외견상의 수정으로 끝나고 신명과 원전에 대해서는 불문에 붙이기로 했다. 차관은 싱긋이 웃으면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재한이는 으스러져라하고 차관의 손을 강하게 쥐었다가 헤어졌다고 한다. 

어느 감화에서 남기신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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