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2. 밀항선

3. 유치장에서

4. 생장   

5. 나병(문둥병)

6. 병력과 전과력

7. 기이한 인연

8. 암흑의 수렁

 9. 악에 강한자

10. 악전침대

11. 첫참배

12. 교회의 사정

13. 수양과에서

14. 교회생활

15.경찰에 잡혀

16. 인연과의 전쟁

17.마디를 딛고

18. 포교소설립

19. 봄은 오다

20. 일진강풍

22.고국을 향해

23. 고성·충무교회

24.시험과 박해

25. 박해와 통합

26. 나심

27. 지바를 흠모

28. 에필로그

신님의 시험 그리고 박해

끼니를 제대로 때우지 못하던 3일 째 되는 날 오후, 오랫만에 날씨가 개어서 볕이 났다.
[오늘은 오랫만에 날씨도 좋고 하니 전도 겸해서 바닷가로 조개나 잡으러 갈까.]
며 재한이는 입주 신자 몇사람과 함께 3일간의 허기를 면할 겸 해초나 조개를 잡으려 바닷가로 나갔다. 열심히 신앙한다고는 하나 입주자들은 아직 수훈의 리를 받지 않고 있다. 수훈의 리는 지바의 오야사마의 어전이 아니면 받을 수가 없다. 일본에 있는 지바에 돌아간다는 것은 밀항이라도 하지 않는 한 바랄 수 없는 무렵이었다. 그것도 그들의 열성적인 근행과 기원으로 도움을 받는 사람이 속출했다.

청학동 근처에 왔을 때 해안에 인접한 노상에 조그마한 보따리가 떨어져 있는 것을 일행의 한사람이 발견했다. 무엇일까-? 속이 궁금해서 풀어보니 돈뭉치가 나왔다. 6800원이나 되는 거금이었다.
[히야 -! 횡재 만났다!]
일행은 환성을 올렸다. 사흘이나 제대로 먹지 못했으니 비록 도둑질은 못할 값에 그런 돈을 보고 탐나지 않을 리 없는 것이다. 갑자기 안색들이 변하여 참으로 신님의 수호이다. 이 정도 있으면 모두 다 허기를 면하고도 남음이 있다 ----는 눈빛이 되었다. 자 이걸 어떻게 하느냐 하고 일동의 시선은 재한이에게 집중되엇다. 결정은 [선생]이 하는 것이다.

[이런 거액을 잃은 사람은 얼마나 괴로울까. 신님을 믿거나 안믿거나 사람은 모두 신님의 자식인 거야. 생긴 쪽은 좋아하지만 흘린 쪽이 울고 있다면 얼마나 괴로우실까. 신님은 양쪽 다 기뻐할 수 있는 리를 가르쳐 주셨지 않는가. 이건 착복해선 안돼. 모처럼의 수입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지금 곧 임자가 찾으러 올 거야. 그 때까지 조개라도 잡으면서 기다려 보자.]
재한이는 일동을 타이르면서 한잎도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 1시간 쯤 지났을까. 숨을 헐덕이면서 여자 한사람이 바쁘게 오는 것이었다. 그 돈의  임자였다.

일행이 해초와 조개를 잡고 포교소에 돌아와 보니 비우고 있는 사이에 쌀 두말과 보리 두말을 이맹순의 동생(처남)이 헌납한 것이었다. 그리고 날이 저물 무렵, 전에 맹장염을 수호받은 바 있는 신자가 참배하여 사례로써 5천원을 두고 갔다. 재한이의 결단에 다소 불만을 품은 사람도 일행중에 있었겠지만 너무도 선명한 실증(實證)에 깊이 느낀 바 있어, 리의 활동이 어떠함을 절실히 깨달아 모두들 용솟음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사소한 일이 계기가 되어 물질적인 혜택뿐만 아니라 터질 듯한 기세로 교세도 뻗어가기 시작했다. 여기서도 저기서도 어버이신님의 수호가 현저히 나타나 폐결핵으로 각혈이 멋지 않는 사람, 척추가 썩어서 고름이 흘러내리는 사람, 간질 등 등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구제의 실적이 자꾸만 나타났다.

[떨어지면 올라가는 길밖에 없다]는 신언 그대로의 리가 실로써 나타난 것이다.
월차제 때는 방이 여섯 개가 초만원이 되어 그 외에도 넘치는 참배자가 길에까지 서서 근행을 올리는 성황이었다. 재한이는 이렇게 술회했다.

[일본에 있을 때, 상급에 기울인 리가 싹텄다고도 말할 수 있고 이것 저것 다 버리고 일본을 떠나왔지만 기울인 리와 버린 리만 몸에 돌아왔다고나 할까요. 만약 그때 보자기의 돈에 눈이 어두워 굶주림에 이기지 못하여 차지했었다면 신님의 시험에 낙제하여 지금까지도 구질구질한 고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가 귀국하기 이전부터 한국에서 천리교 포교에 종사하는 우수한 한국인 전도자가 많이 있었다는 것은 새삼스레 여기서 소개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전과 동시에 한국에 있던 일본인 천리교 신자는 총총히 일본으로 돌아갔고 외로운 고아처럼 내동데이쳐진 한국인 신자 가운데서 친일종교라며 얼토당토 않는 혹평과 백안시를 받아가면서도 신님의 목표(目標)를 사수하면서 오늘날의 천리교의 기초를 굳히기에 온갖 고난을 겪은 사람들이 있다.

비록 조국은 독립과 해방을 쟁취했다 치더라도 패전을 당한 일본인도 상상하지 못할 박해를 한국에서의 천리교 신자는 받아왔던 것이다. 소식에 어두운 필자가 아는 범위내에서도 김태봉(대구교회) 김선장(미선교회) 김순염과 나상기 모자(진해교회) 김점이(부산교회) 김기수(혜성교회) 등의 교회장이 겪은 수난의 길은 눈물없이는 이야기할 수 없는 장열한 것이었다.

이들 훌륭한 용재들을 간과하고서는 한국의 천리교를 이야기할 수는 없으나 유감스럽게도 한권의 책으로써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 여기서는 최재한이라는 인물 한사람에 한해 주제를 좁힐 것을 양해 바라는 것이다.

1950년 6월 이래 3년 간에 걸친 이 나라의 남북동란은 최재한이가 귀국했을 무렵에는 겨우 전화(戰火)가 멈추었다고는 하나 전후의 부활은 요원한 것이었다. 자꾸만 높아가는 반일(反日)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천리교포교는커녕 평범한 신앙도 계속하기가 어려웠다. 당시 한국에서의 대일감정은 일본인이 생각하고 있는 정도를 훨씬 초월하여 지금도 뿌리깊은 민족감정의 저류가 되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º 천리교의 발상지가 오랜세월 한국을 지배하고 괴롭혀온 일본이라는 것.
º 교조가 일본인이라는 것.

이것만으로도 반일적인 국민여론에서 따가운 반격을 당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천리교를 믿는 자는 "친일파의 개"이고, "매국노의 앞잡이"로써 조국의 자주독립을 강조하기 위하여 박해의 목표로 삼은 시기였다. 크리스찬이었던 이승만 대통령의 전권 아래서 한국의 천리교인이 받은 탄압은 일본에서의 1800년대 말기, 1900년대 초기의 그것보다 훨씬 지독한 것이었다.

총검을 등에 들이댄 채로 연행 당한 포교자, 납치된 채로 행방불명된 여성포교자 등 일본에 본부를 갖는 천리교도이기 때문에 겪는 수난이었다. 마음 약한 신자는 길에서 양복입은 사람(관리)만 만나도 취체하는 사람이 아닌가 겁을 먹거나 포교를 단념해서 장사를 하거나 혹은 지하포교로 자기만족을 하는 양상이었다고 한다.

그러한 상황이 계속될 무렵에 최재한이가 귀국했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커다란 필연성이 있었던 것으로써 철추(鐵鎚)에 반격하는 철검(鐵劍)을 들이댔다는 것과 비슷하다 하겠다. 그는 취체나 압제에 주눅이 들어 꼼짝달싹도 못하는 그러한 선량한 시민은 아니다. 상황이 불리하면 불리할수록 이것 보란 듯이 더 고답적(高踏的)으로 행동하는 인간이다. 부산에서는 범위가 좁다하여 마산·대구·서울 등 대도시를 뛰어다니며 한국어에다 일본어를 뒤섞어 우레와 같은 큰 소리로 天理王命의 신명을 전했다. 교우들은 저러다가 잡혀 들어갈 걸 하면서 두려워 하더라는 것이다.

[일본말은 적국 말이니까 입에 담으면 철창신세를 진다면서 주위에서는 못하게 하지만 일본에서 20년 이상이나 지껄여 온 말이 아닌가요. 입에 익어서 어느새 나오는 걸요. 흥분하면 더 일본말이 뒤쳐나옵니다. 더군다나 천리교 이야기는 일본말로 배웠기 때문에 입에서 나오는대로 마구 지껄여도 어느 누구 한사람 나를 어떻게 하겠다는 말은 않더군요.]

이런 술회 가운데에 보통의 만용(蠻勇)이 아니고 믿음에 철저한 범상(凡常)의 경지를 넘은 독특한 힘이 그에게 있어 특유의 강인한 자질이 신의 의도에 감응되는 바, 신의 힘이 그를 매체(媒體)삼아 초목을 쓸고 가는 듯한 인상을 느낀다. 국가권력의 말단인 경찰에 대해서는 소심한 선인(善人)이나 얌전한 사람일수록 경원한다.

당국의 압제하에 있었던 그 무렵의 대개의 포교사는 경찰에 끌려가는 것을 내심 두려워 하면서 포교를 했다고 하는데 이 점 재한이는 일본에 있을 때부터 콩밥과 철창은 익숙해서 언제 끌려가도 이웃집에 가는 기분으로 있기 때문에 어디에 나가도 겁낼 것을 몰랐던 것이다.

부산 대교동의 포교소에 신자가 넘칠만큼 되었을 때 이맹순 부인이 귀국했다. 2년만의 부부 상봉이었다. 포교소 사람들은 더욱 용솟음쳐 교회설립을 출원하자는 기세가 짙어가서 1957년 2월 28일 여기에 영도(影島)교회의 탄생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