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의 모험자 그 -2

回生의 冒險者 최재한 그 -2
밀항선
일본에서의 포교시절

1. 프롤로그	2. 밀항선	3. 유치장에서	4. 생장	5. 나병(문둥병)	6. 병력과 전과력
7. 기이한 인연	8. 암흑의 수렁	9. 악에 강한자	10. 악전침대	11. 첫참배	12. 교회의 사정
13. 수양과에서	14. 교회생활	15.경찰에 잡혀	16. 인연과의 전쟁	17.마디를 딛고	18. 포교소설립
19. 봄은 오다	20. 일진강풍	22.고국을 향해	23. 고성·충무교회	24.시험과 박해	25. 박해와 통합
26. 나심	27. 지바를 흠모	28. 에필로그

밀항선

기타규슈(北九州)의 와카마츠(若淞)항을 50톤 정도의 한국 무역선이 한 척 방금 안벽(岸壁)을 떠나려 하고 있었다. 기관실은 더르렁대고 밪줄은 감아 울려졌건만 좀처럼 부두를 떠나지 않는다. 출항 예정 시각은 벌써 지났다. 한시간 쯤 지나서 엔진은 멎었다.

사증(査證)이 없는 옷감들이 적재되어 있는 것이 세관 직원의 눈에 띄인 것이 동기가 되어 화물 전체의 재검사를 받기에 이르런 것이다. 밀수 혐의를 받게 된 것이었다.

최재한이는 갑판 한 쪽 구석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드람통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사정이 있어 그는 밀항으로 귀국하려 했던 것이다. 한국인의 선장 이하 승무원은 13명, 최재한은 가진 돈에서 5만엔을 선장에게 주고 승무원들에게도 응분의 대접을 하여 몰래 편의를 제공 받았던 것이다.

소지품은 빨강 표지의 [신악가]책과 박자목·수취·제금뿐이다. 자기 목숨보다도 중히 여기고 있는 그것뿐인 재산을 보자기에 싸서 가슴에 품고 기름내음이 코를 찌르는 캄캄하고 비좁은 드람통 속에 몸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불과 50톤급의 소형선인데도 화물의 검사는 제법 시간을 끌었다. 그렇다기보다도 의혹의 눈으로 보였기 때문에 검사는 하나하나 까다로왔고 조그마한 선반 구석에서 의자 밑바닥까지 뒤져보는 형편이었다.

작업이 시작된지 6시간쯤 지나서 재한이 숨어있는 드람통 차례가 되었다. 관리는 곁으로 다가가서 손을 뻗으려 하다가 통이 너무 오래된 것인데다가 너무도 더러웠다. 기름은 온통 떡칠이었고 게다가 콜탈이 드람통가에 찐득찐득 묻어 있었기도 하거니와 곁에 가니 이상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손을 댈 수 없으리만큼 기름이 묻어 있는 것과 아무렇게나 놓였던 것이 다행이었다. 관리는 일별했을 뿐으로 대려든 손을 그만두고 다음 부서로 옮겼다.

통속에 숨어있는 재한이 보다도 입회하고 있던 선장쪽이 더 간이 싸늘했지만 그 속에 설마 사람이 들어 있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어쨌든 무사히 검사를 마친 것은 무려 8시간 후의 일이었다.

1955년 3월 8일 오후 5시께 한국인 전도자 최재한을 태운 밀항선은 이제 겨우 와카마츠항의 부두를 떠났다. 선창가의 한모퉁이에서는 그의 아내 이맹순과 동생 최기대가 마음을 조이면서 그 동정을 살피고 있다가 배가 무사히 출항한 것을 확인하자 그 자리를 떠났다.

쵀재한이가 조국의 땅을 밟은 것은 23년 만이며 그가 44세 되던 해이다. 드람통에 숨어든 것은 오전 8시 전, 배가 현해탄을 지나 드람통에서 나오게 된 것은 다음날 밤 9시였다. 머리카락도 옷도 기름투성이가 되었지만 신악가 책과 근행의 도구를 싼 보자기만은 더럽혀지지 않도록 가슴에 꼬옥 안고 있었다. 예사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일이다. 요즘의 7천톤급 부관 페리호라도 15시간은 좋게 걸리는 항로이다.

그가 탄 소형선은 부산에 귀항하게 되어 있었으나 선장의 재량으로 한려수도를 우회하다가 어느 해상에서 조그마한 전마선을 교섭하고서는 그것에 옮겨 탔다. 최재한의 고향은 경상남도 사천군 사남면이다. 같은 도내(道內)라도 부산보다는 훨씬 서쪽에 있다. 직선거리로 보아도 80km는 족히 될 것이다.

상륙지점 삼천포는 이 지방에서도 유수의 항구도시중의 하나이다. 무사히 고국의 땅을 밟기는 했으나 그에게는 정해진 이주지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무숙의 몸으로 어디라는 정처도 없이 최재한이는 여기서 귀국 제일성의 전도 노방강연을 했다.

[여러분-, 한 말씀 참고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천리교 포교를 하는 사람입니다. 본래는 나병이라는 정말 괴로운 질병으로 손과 발이 오그라 들도록 악화하여 고생 고생하다가 한 때는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습니다. 그런데 천리교 신앙으로써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 가르침을 일러주신 오야사마는 없던 세계와 없던 인간을 만들어 주신 으뜸인 神 진실의 神의 現身으로써 천에 하나 틀림없는 말씀임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오야사마에 의하면 인간의 어버이가 되시는 天理王命이라는 이 신님은 물·불·바람의 수호를 하여 생명을 주시는 진실한 어버이신님으로 우리들의 부모신이라 가르쳐 주셨습니다. 일분일초도 쉬임없이 수화풍(水火風)으로 수호를 베풀어주시는 그 은혜를 모르고 있어서는 정말 죄송한 일입니다. 이 신님을 신앙하고 그 가르침을 실천하면 아무리 불치의 병이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고마우신 天理의 가르침을 하루 속히 신앙하실 것을 간곡히 권하는 바입니다.]

일본에 있을 때도 일과처럼 해 온 노방강연이다. 밀항을 했다는 티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살아서 다시 조국의 땅을 밟게 된 기쁨과 그 대지 위에 서서 조국의 동포에게 조국의 말로써 길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감격으로 그의 마음은 크게 약동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을 향해서 힘껏 소리 높여 전도하는 것이 입신 이래로 그가 첫째 신조로 삼는 보은의 길이었다. 중엉 중얼거리면서 한사람 두사람 붙들도록 하고 있어서는 전 인류의 구제를 서두르시는 어버이신님의 의도에는 따라갈 수 없다. 첫째 스스로에게도 용기가 나지 않으므로 가두에 서서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한다는 것이 최재한 특유의 용감한 포교방법이다.

가두에 서서 큰 소리로 군중을 향해 神의 수호를 설파하는 것은 곧 세계에 길을 전하는 행동이다. 자신에게 용기를 갖게 하기 위해서 그것을 하는 거라고 그는 말하지만 감동이 결단을 부르고 결단이 행동을 촉진시켜 행동이 용솟음치는 마음을 끓어 오르게 하여 끊임없이 주위에 활력의 파동을 유발하는 원천이 되는 것이리라.

그로부터 4반세기가 지나간 지금도 그는 70노구(老軀)를 잊은 채 매일 빠짐없이 부산시내 골목골목을 누비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