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의 모험자 최재한 그 -18

회생의 모험자 崔宰漢 그 -18
元博布敎所

1. 프롤로그	2. 밀항선	3. 유치장에서	4. 생장	5. 나병(문둥병)	6. 병력과 전과력
7. 기이한 인연	8. 암흑의 수렁	9. 악에 강한자	10. 악전침대	11. 첫참배	12. 교회의 사정
13. 수양과에서	14. 교회생활	15.경찰에 잡혀	16. 인연과의 전쟁	17.마디를 딛고	18. 포교소설립
19. 봄은 오다	20. 일진강풍	22.고국을 향해	23. 고성·충무교회	24.시험과 박해	25. 박해와 통합
26. 나심	27. 지바를 흠모	28. 에필로그

하늘을 나는 독수리 : 겡하쿠(元博)포교소

40일 이상이나 계속된 이상한 발열은 그날 아침부터 정상으로 돌아와 그는 재기(再起)의 문턱에 설 수가 있었다. 여기서 다시 한번 있는 것 없는 것 바쳐 버리고 무일푼으로 돌아가야겠다고 결심한 그는 외투도 시계도 팔아서 신님께 헌공하고 향후 3년간, 작정한 마음을 관철하기 위해 신천지를 찾아 키타규우슈(北九州)로 떠나기로 했다.

그해(1949년) 3월 말께, 그는 후쿠오카시(福岡市)의 하코자키(箱崎)에 자그마한 집을 한채 빌어 여기에 제단을 차려서 신님을 모셨다. [겡하쿠(元博)포교소]의 발족이다. 겡하쿠의 명칭은 상급교회의 元和(겡와·元和)의 元에다 새로운 포교지인 하카타(博多)의 하쿠(博)을 붙인 것이다.

일신을 내던져 달려가는 포교활동은 최재한 특유의 기질로 바쁘게 전개되어 포교소에는 날로 새로운 신자가 참집하기 시작했다. 키타큐우슈에는 한국인이 많다. 의사가 포기한 중병자가 차례 차례로 그의 수훈을 받고 도와져 가는 모습을 보고 찾아드는 제일고포로 일가월중 포교소가 번성해 갔다. 술도 담배도 고기도 생선도, 무릇 남자가 챙기는 일체의 낙을 끊어 버린 그의 전도생활은 남녀노소 동포신자로부터 커다란 신뢰와 존경을 받게 되었고 소문을 전해듣고 입신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금욕을 엄수하는 선승(禪僧)과 같은 생활뿐이라면 존경은 받을지라도 사람은 모여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 준엄한 생활은 그대로 [구제한줄기의 길의 뒷받침이 되고 어버이신님의 의도에 합치되어 세인이 놀랄 만한 영구(靈救)가 매일같이 나타났다. 부르지 않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은 그의 금욕생활에 공명했기 때문은 아니다. 거기에 발생하는 신기한 구제에 젖고자 하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 무렵, 야기(八木)대교회에 보내져 오는 수양과생이나 별석지원자(아홉번의 별석을 거쳐 수훈의 리를 받고 어버이신님의 용재가 되어 전도에 나서는 사람)의 태반은 최재한이의 인도를 받은 사람들이었다. 야기대교회의 숙소(詰所·합숙도장)는 한국인 수양과생이나 별석자로 언제나 붐볐으며 지난 날의 험악한 생활에서 손을 씻은 벼락신자도 많이 있었다. 최재한의 포교는 선남선녀는 말할 것도 없고 세인에게서 버림을 받은 깡패나 형려자(刑余者), 노름쟁이 할 것 없이 일체 구별이 없고 어버이신님을 믿고 그 가르침을 따른다는 바탕에 마음을 두는 사람이면 모두 똑같이 [형제]로써의 대우가 베풀어 졌다.

[너, 어제 수훈의 리를 받았지, 그러니 나를 빌어 줘. 나는 너를 빌어줄께.] [천리교는 그저 빈다고 되는 게 아니야. 조금이라도 봉상하고 빌어야 하는 거야.]
[나를 도와달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을 도와주소서! 하며 기원해야 된다고 하셨잖아.]
[복달라고 빌면 안된다지? 잘못을 빌어야 용서해 주신대..]
[남을 도와야 내 몸이 도움받는대!]
[구제받을려면 근행에 빠져서는 안되겠지.. 가르쳐주신 보배니까...]
[참 신기한 수훈이지, 어째서 天理王命의 신명을 부르며 환부를 쓰다듬는데 감쪽같이 병이 나을 수가 있을까?]
[오야사마를 의심하면 효과가 없는 거래..]
이런 말을 주고 받으면서 그들은 재미삼아 수훈의 효능을 자랑하거나 큰 소리로 [신악가]를 부르거나 하면서 숙소 안은 한 때 이상한 분위기로 가득찼었다.

당시의 세태를 살펴보면 6월 하순에는 소련에 억류되었던 일본군의 귀환이 재개되어 2천명이 귀국하는 가운데 여름에는 역사적인 국철(國鐵)의 대사건이 뒤이어 일어났다. 7월 6일의 시도야마(下山)사건, 7월 15일에는 미타카(三魔)사건, 8월 17에는 마츠가와(松川)사건 등이 그것이며 그 밖에도 특이한 국철의 불상사가 속발하여 세태는 소연해지고 열차공포시대의 도래라 일컬어졌었다. 국내는 아직도 미군치하에 있었으나 10월에는 고구마의 자유판매가 이루어지고 담배의 가정배급이 폐지된데다가 전국 신문의 석간이 부활되는 등 겨우 전후 부흥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한편, 하코자키의 겡하쿠(元博)포교소는 어떠했던가.
불치의 난병이나 [빈사의 중병을 도움받고 수양과를 마치고 돌아온 독신자들이 가업을 버리거나 직업을 팽개치고 재한이의 수족이 되어 활동하게 해 달라고 포교소 신전에 퍼져 앉아 움직이지 않으려는 자도 나타났다. 먹든 못먹든 상관 않을 것이니, 구제한줄기의 길을 걷겠끔 해 달라는 지원자들을 그는 차례차례 맞아들이는 가운데 좁은 포교소는 갈수록 좁아지고 한 때는 14명에 달하기까지 했다. 국토부흥이 이제 겨우 이루어지려던 참이긴 하나 아직도 생활물자가 궁핍된 시대로써 사람들은 모두 사는데에 혈안이었다.

선승(禪僧)과 같은 자계(自戒)의 생활을 지키고 있는 재한의 신변에는 생활에 보탬이 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입주 지원자들은 처음에는 제법 의욕적이어서 쌀을 가져 오는 자 술을 갖고 오는 자 야채나 과일을 들고 오는 자 등 등, 생활물자는 당장 발도 디딜 틈이 없을만큼 집안에 쌓였다. 그러나 재한이는 [마음작정]이 있어서 술도 안마시고 담배도 피우지 않으므로 그들도 차츰 뒤를 따라서 쌓였던 물자는 저절로 생활곤궁자에게 나눠주게 되어 포교소내의 일상생활은 갈수록 적빈에 빠져 들어갔다.

수입은 일체 단념하고 모여든 사람들 뿐이기 때문에 생활은 자꾸만 핍박해지고 이윽고 시래기를 넣어서 삶은 죽이 주식이 된다. 그것도 차츰 멀거지고 쌀 한홉의 죽에 시래기를 띄울 뿐인 마치 가축의 모이보다 못한 것을 15명이 나눠 먹는(실은 마시는)생활이 되어 갔다.

그러나 단순하고 소박한 교우들은 일견 비참한 극빈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오야사마의 모본에 다가가는 길이라 믿고, 여느 날을 빈배를 안고 발바닥에 불이 붙을만큼 전도에 돌아다녔다.
[머리맡에 산더미처럼 먹을 것을 쌓아두고도 먹을래야 먹을 수조차 없는 사람에 비하면 물을 마시면 물맛이 나지 않는가.]
라는 말씀을 되새기며 오야사마가 겪으신 50년간의 노고와 적빈생활을 생각하면 오히려 죄송한 심정이라 위로 했다.

그러한 가운데 입주자들은 모두 가족이 있었기 때문에 때로는 가족들이 갖고 오는 것이 있어서 어찌 어찌 넘어가곤 했으나 재한이야말로 독신으로 포교지에 왔으니 그러한 의미로써의 원호자는 없었다. 남들이 가져와서 권하는 것도 상급교회를 출발할 때부터의 마음작정을 관철하기 위하여 쳐다보지도 않았다. 오히려 인기척이 없는 산간에 혼자 있는게 편할 정도이다. 신변에는 너무도 자극이 될 만한 대상들이 많았다. 그러나 자신과의 싸움에는 오히려 그 가열(苛烈)함이 그 자신의 의지를 굳히는데에 거름이 되었고, 형무소에 있다고 생각하면 스스로의 의지를 행하는 포교사라는 것이 오히려 고맙게 생각되었다. 어떻든 자유가 있고 스스로 선택해서 전도에 나설 수 있는 자재(自在)의 천지가 전개되고 있었던 것이다.

물질적인 부자유를 견디고 작정한 마음을 지켜가는 일상생활은 고생이 쌓일수록 심기가 맑아져서 가는 곳마다 어버이신님의 신기한 수호가 나타나 중풍·폐결핵·심장병·위암 등 의사가 포기한 병자가 수호를 받는 사실들이 속출 되었다.

조석의 근행은 참배자로 가득 찼고 부축을 받고 기어들어오는 병자가 끊임없는 상태로 재한이를 비롯한 입주자들은 그 응접에 쫒기어 저녁 식사는 언제나 밤늦게라야 겨우할 수 있었다. 수양과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 수훈의 리를 배대받고 감사참배하러 온 사람, 오랫동안 걷지 못하다가 걷게 되었다고 신전에서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 죽어도 감로대(인간을 창조한 증거로 교회본부의 신전중앙에 세워둔 대)에 참배해 볼 것이라며 우기는 사람등 등, 잡다한 사람들의 출입으로 겡하쿠(元博)포교소는 적빈속에서도 활기 넘치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포교소를 개설하고부터 짧은 기간 동안에 백명이 넘는 신자가 매일 출입하게 되었는데도 최재한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가두에 나섰다.
어느 날 하카다(博多) 역전에서 가두강연을 하고 있는데, 사복을 한 형사가 가까이 와서 신분증을 얼핏 보이면서
[당신을 천리교 포교사라고 알고 있는데 아까부터 듣자하니 서로돕고 서로 받들고 하는 말을 하던데 그건 공산당에서 하는 말이 아닌가요.]
하고 시비를 걸어왔다.

소련에서 억류자들이 속속 귀국하고 있으며 젠신자(前進座)는 전원이 공산당에 입당하고 각처에서 정치적인 사건이 연발하고 공산당이나 노동자의 캠페인이 전국적으로 전개된다는 형편으로 경찰당국은 신경을 곤두 세우고 있었다.
[서로 받들고 서로 돕고 즐기려는 모습을 보고 神人이 함께 즐기려는 세계의 건설]
이라는 것은 인간창조의 목적이자 천리교의 핵심 교리인 것이다. 그 목적세계 구현을 위해 창조신을 징험시켜 오야사마의 도구를 끌어모으고 있는 중대한 일을 하고 있는 중이다.

[경찰 양반입니까. 공산당이 무얼하는건지 몰라도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은 천리교 이야기 뿐입니다. 공산당이 나쁜 겁니까?]
[그럼 나쁘지.]
[나쁜지 좋은지 나는 모릅니다. 누가 무엇을 기준으로 결정하는 건지요. 어떻든 사람의 마음가짐이 중요한 건 아닙니까?]

당시의 열차는 깨어진 유리창의 수리도 마치지 않고 지선(支線)에서는 찢어진 시트가 그대로였으며 공원같은 곳은 개똥이나 쓰레기로 가득쌓인 그런 형편이었다. 공산당은 그것을 따지고 당국을 비난했으며 그 정비에 진력하고 있었으니 최는 그것을 생각하고 말한건데 형사는 그것이 못마땅했던지 논쟁이 가열 되었다. 그는 비록 학식은 없지만 기민하게 돌아가는 눈치 하나는 비상한 자질을 갖고 있다. 아무렇게나 시간을 허비한다는 것은 신님께 죄송스런 일로써 좋은 일이라면 정당이나 주의·사상에 구애됨이 없이 누구든 해야 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결국, 형사가 그의 변설(辯舌)에 압도 당하여 타협해 왔다.

[당신은 한국인이지요. 어쩜 그렇게 신앙하게 됐나요?]
[거야 어느나라 사람이라도 天理王命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 조만간 이 길에 오지 않을 수 없도록 영혼에 도수가 이미 짜여져 있는 걸요. 그래서 신님의 이야기를 만인의 혼에다 심고 있는 중이지요. 아무리 처음 듣게 되어도 오야사마를 의심하지 않게 되면 어떠한 난병도 도와주시는 것이지요. 이 신님은 인간의 부모神님이니깐요. 나라가 달라도 인종이나 말이 달라도 물·불·바람의 수호를 베푸시는 이 신님의 마음에서 떠나면 언젠가는 몸도 나라도 못쓰게 되는 날이 옵니다. 반드시요. 그러니 하루라도 먼저 이야기를 듣게 된 사람은 그만큼 신님의 총애를 받는 것이고 쓸모가 있다는 이야기가 되지요. 지금 계속 할 것이니까 형사 양반도 거기서 끝까지 들어 보시요.]
[아니, 나는 아직 근무중이라서 실례를 해야지요, 부지런히 하시요.]

형사는 한 손으로 안녕을 고하고 등을 돌리며 어느새 떠나 버렸다. 그는 전도의 연설에 열을 올리기 시작하면 눈앞의 대상이 모두 [신님의 일꺼리]처럼 보이고 자기가 경찰의 지명수배자라는 사실도 잊어 버리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