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2. 밀항선

3. 유치장에서

4. 생장   

5. 나병(문둥병)

6. 병력과 전과력

7. 기이한 인연

8. 암흑의 수렁

 9. 악에 강한자

10. 악전침대

11. 첫참배

12. 교회의 사정

13. 수양과에서

14. 교회생활

15.경찰에 잡혀

16. 인연과의 전쟁

17.마디를 딛고

18. 포교소설립

19. 봄은 오다

20. 일진강풍

22.고국을 향해

23. 고성·충무교회

24.시험과 박해

25. 박해와 통합

26. 나심

27. 지바를 흠모

28. 에필로그

인연과의 전쟁

나라시의 겡와분교회에 입주자로써 노력하던 무렵의 벌거숭이 최재한과 한 때 대한천리교 최고협의회 의장이었고 신자 수만명을 이끄는 부산시의 원남성교회장인 최재한과는 물론 동일인과 적수공권으로 조국에 돌아간지 25년, 부산 영도의 일각에 우뚝 솟은 교회의 장엄한 대건축과 불꽃이 일 듯한 활기에 충만된 교세를  목격하는 사람은 아마 경이의 눈을 뜰 것임에 틀림없다.

그의 옛날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변천이 너무도 큰 현실에 혀를 내두를 것이리라. 인간의 일대(一代)에서 이처럼 웅혼(雄渾)한 변용(變容)을 해낼 사람은 적어도 천리교 안에서는 메이지(明治)시대의 초창기에 소급하여 찾아 볼 도리밖에 없다고 생각되는데 그 커다란 변용 가운데서 이 사람에게는 한가지만 예나 지금이나 전혀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입신초부터 시종일관하고 있는 전도의 노방강연이다.

이 전도노방강연의 모습을 이야기할려면 이 책을 8할 가량이 그것으로 메꾸어지기 때문에 36세 때부터 70세에 이르는 30수년 간, 이것이 전도자 최재한의 신앙을 일관해온 가장 굵은 기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신자 4만을 헤아리는 대한천리교단 가운데서 최대의 시설을 갖춘 원남성교회 역사중에도 회장인 최재한은 현장에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매일 부산시가지를 누비며 노방강연에 소일했었기 때문이다. 자기 교회가 어떤 상태로 역사를 추진하고 있는가. 건축비가 얼마나 들고 있는가. 그런 것은 안중에 없었다.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건축위원 역시 재정에 관해서는 그의 귀에 들려주려 하지 않았다. 재한이는 교단의 통솔자일지라도 신앙심의 계발(啓發)에는 열렬했어도 교회의 운영에는 일체 아랑곳 하지 않았다. 연인원 8만 수천명의 히노끼싱을 투입했다는 장대한 예배장도 그에게 있어서는 가두와 옥대의 차이 정도로밖에 생각되지 않은 것 같다.

초심(初心)은 지금도 변함없고 가사상태의 지옥의 밑바닥에서 기어나온 재생의 으뜸하루가 언제나 그의 가슴에서 떠나지 않고 새겨져 있기 때문에 지금도 가두에 서서 입을 열면 30수년 전에 입은 영험의 기쁨이 이야기의 토대가 되어 혀끝으로 튀어 나오는 것이다.

이야기는 다시금 그 무렵으로 돌아간다. 최재한에게는 [마음작정]이란 것이 어떤 식으로 관철되었던가. 이것은 그 일단을 이야기하는 당시의 에피소드 하나이다.

겡와분교회에 입주자로써 있을 무렵 [길에서 만나는 사람은 한사람도 빠짐없이 전도용 팜프렛을 전하겠습니다.] 며 신전에서 작정하고 교회를 나왔다. 오사카에 당도한 것이 오전 8시께. 으례히 그는 쯔르하시 역전에서 노방강연을 전개하여 눈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짤막한 설명을 덧붙인 팜프렛을 전했다. 아랑곳 없이 지나치려는 사람이 있으면 뒤따라 가서 손에 쥐어 주었다. 한사람도 남김없이 하고 신님께 약속드렸으니 그날은 숨쉴 사이없이 바빴다.

러시아워가 지나서 통행인이 조금 줄어들기 시작할 무렵 번쩍이는 금줄을 두른 제복의 경감이 지나쳤다. 경관의 제복은 말하자면 권력의 상징인 것이다. 과거 10수년 재한이는 그 제복을 상대로 얼마나 싸워 왔던가. 경찰은 항상 그의 적이었고 지금까지도 그들에게 쫓기는 몸이다. 그는 제복차림에 다가가서 고개를 숙이고서는 짤막한 연설을 하면서 팜프렛을 전하려고 했다. 경감은 귀찮은 듯이 얼굴을 외면하면서 지나치려고 했다. 재한이는 매달리듯 뒤따라 가서 전하려 한다. 상대는 한손으로 떨쳐 버리듯이 하면서 걸음을 서둘렀다. 재한이는 재빨리 경감 앞을 막아서며 -

[제발 부탁입니다. 이걸 받아주십시요.]
허리를 굽히면서 집요하게 내밀었다. 신님과의 약속인 것이다.

[귀찮은  사람이군, 당신은 - 바라지도 않는 걸 억지로 받아라 해서 되나.]
[그렇긴 합니다만 이건 천리교 팜프렛입니다. 나중에라도 읽으시면 반드시 좋은 참고가 될 겁니다. 귀찮다 생각마시고 받아주십시요. 네?]
[싫다고 하잖소! 그래도 강제로 할 거요! 내가 경찰관이란 건 보면 알겠지. 보행방해죄로 본서에 연행할까!]
(남의 진로를 막아서서 비끼려고 하지 않고 불안을 느끼게 하는 행위는 경범법에 저촉된다고 한다)

[경감님, 아니 어르신, 나를 본서로 연행한다고요. 경찰의 높은 분치고는 이상한 소리를 하십니다. 경찰 간부가 아니십니까. 부하나 시민을 지도하는 입장에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천리교가 어떤 종교인가 하는 것쯤은 알고 있어도 될법한데요. 내가 이 팜프렛을 드릴려고 하거든 아무말 말고 받아두시면 될 일인데 왜 고집을 부리고 안받으십니까!]
[정말 귀찮은 사람이네 필요없으니 필요없다는데 , 웬 잔말이 그렇게 많아!]
경감이 움직이려하자 재빨리 그의 면전에 바싹 다가섰다. 그런 행동을 취할 때의 재한이의 동작은 마치 표범처럼 빠르며 눈빛은 먹이를 만난 호랑이의 안광처럼 매서움을 띠기까지 했다.

[경감님, 당신은 인간의 법률을 다스리는 분이지만요. 나는 천리를 다스리는 포교자입니다. 인간이 만든 법률이 무서운가 천리가 무서운가 한번 견주어 볼까요?]
[뭐! 견주어 본다고! 무얼 어떻게 견주어 본다는 거요.]
[경감님이 나를 끌고 콩밥을 먹인다면 발이 땅바닥에 들어 붙어서 꼼짝  못하게 될 겁니다. 그래도 나를 연행하실 겁니까. 나도 웬만큼 고집이 세고 끈질긴 인간인데요. 이 신님에게는 당할 수 없습니다. 어때요. 그래도 해보겠습니까?]

[....당신도 제법 색다른 사람이군, 그렇게 말하는데 ...., 그렇다면 한 장 얻어가지.]
경감은 표정을 조금 풀면서 팜프렛을 손에 받아 쥐었다.
[그렇습니까. 받아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미소인지 고소인지 얼굴에 띄우면서 저만큼 걸어가던 경감은 두어번 돌아보면서
[좋은 공부를 했소. 당신이 지금 나한테 하듯 그런 열성으로 매사 덤비면, 반드시 어디서든 출세할 거요. 그 마음으로 만사 나아가시요. 하고 한마디 남기고는 사라져 갔다.

같은 무렵의 어느 날 오사카 덴노지(天王寺) 근처의 가두에서 통행인을 향해 그는 한센씨병(나병)을 구제받은 경위를 몸짓을 섞어가며 강연하고 있었다. 남들이 부끄러워 하며 숨길 것이라도 그는 널리 공개하며 예사로 개진(開陳)한다. 허영도 허식도 체면도 자존심도 그런 것은 일체 내던져 버리고 언제나 자신을 온통 노출시켰다.

[정말로 인연납소의 길을 걷겠다는 마음이면 모두 백일하에 고백해 버려야 합니다. 나쁜 것을 숨기고 있어서는 좋은 신앙은 못합니다. 나같은 악당이라도 신님을 신앙할 자격이 됩니까 하고 물었더니, 기무라·히데노 선생님은 그런 사람일수록 깊은 신앙을 가져야 한다고 깨우쳐 주시더군요.]

악당을 스스로 인정한 연후에 신념을 굳혀 출발한 것이기에 자기의 과거에 대해서는 오히려 듣는 쪽이 가슴이 두근거릴 만큼 적나라하게 공언하여 마지 않는다.

그날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손가락질 하면서 이렇게 어버이신님의 수호를 받았습니다. 하고 소리를 드높여 연설하고 있었다. 길을 오가는 사람들은 힐끗 힐끗 그를 쳐다보긴 했으나 모두 바쁜 듯이 지나가 버리는 가운데 꼭 한사람이 발을 멈추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양복차림의 신사가 있었다. 50전후의 침착하게 보이는 품위있는 사람이었다.

[아까부터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데 조금 지나친 것 같아요. 나는 이 근처에서 교회를 맡아보고 있는 사람인데 이 길은 오야사마의 모본의 길이라 듣고 있습니다. 전도하는 것도 좋은데 수호를 받은 이야기를 할려면 좀 더 깨끗이 완쾌된 다음에 해도 늦지는 않을 거라 생각됩니다. 정말로 도움받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전도니까...., 조금 말을 삼가는게 오히려 천리교를 위해 좋지 않을까요?]

약간 비꼬는 투의 충고였다. 근처의 교회장이라 자칭한 그 사람은 재한이의 얼굴을 쳐다보면 아직도 나병 흔적이 짙게 남아 있지 않은가. 그리 큰소리 할 것도 없지 않나 하는 듯이 그 의미를 암시하고는 사라졌다.

그것도 그럴 것이, 남이 보면 아직도 나병환자로서의 표가 역연했다. 그 교회장은 교우의 입장에서 보다 못해 가두강연을 하기에 어울릴만큼 수호를 받고나서 강연의 내용에 거짓이 없는 모습으로 전도하는 것이 좋으리라고 충고해 준 것이리라. 그러나 재한이 자신에게는 빈사(頻死)의 유명경지(幽明境地)에서 소생한 기쁨이 가슴 가득히 충만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문밖출입도 할 수 없었던 부자유스럽던 나날을 돌이켜 보면 지금 나라시에서 오사카까지의 길을 남의 부축도 없이 걸어와서 대중앞에서 구제받은 기쁨을 이야기할 수 있는 요행을 어찌 가만히 가슴속에 접어둘 수 있겠는가 말이다.
[저 선생은 지난 날의 나의 모습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만큼이나 수호를 받았는데요 -]
그는 모처럼의 충고에 구애받지 않고 연설을 또 계속했다. 비록 경찰권으로 구속될지라도 구제받은 기쁨을 토설하는 그의 입을 봉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몇 년인가 세월이 흘렀다.
최재한이는 5백명이 넘는 지바귀참단체를 인솔하고 남 예배장 앞  광장에 서 있었다. 추계대제로 붐비는 혼잡속에서 전에 그의 노방강연에 충고를 주었던 교회장이 그 단체의 인솔자인 최재한을 보았다. 낯 익은 얼굴이어서 동행한 사람에게 물었다. 당시 한국인 전도자 최재한이란 이름은 교내에 널리 펴졌었다.

[저 사람이 하카타(博多)에서 포교하는 최씨입니다.]
라는 말을 들은 그 교회장은 그날 저녁에 일부러 야기대교회 숙소로 그를 찾아 왔다.
[잊으셨는지도 모르지만....]
하는 전제를 두고 그 교회장은 지난 날의 경솔한 행위를 후회하면서 사과하는 것이었다.
[아아니, 그 때 선생님 아니십니까...., 미숙한 그 때의 노방강연은 얼마나 귀에 거슬리셨는지 모릅니다. 내 얼굴도 그 때보단 훨씬 좋아졌습니다만 전에는 정말 이야기가 안됐었지요. 그 당시 나의 전도는 전도라기 보다 매일 전쟁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중한 인연과 맞 붙어서 어떻든 이기기 위해서는 신님의 힘을 얻어야겠다는 마음에서 마치 전쟁하는 각오로 덤벼야 했던 것입니다. 나라시도 교토시도 오사카도 나한테는 싸움터나 같은 것이었지요.]

교회장은 청주를 선물로 한병 사왔지만 금주·금연중이던 그는 단체 역원에게 주어 버렸다.

- 쉬면 인연에 뒤쫓긴다. 어버이신님은 잠시도 쉬지 않고 수호해 주시는데 이쪽에서도 쉬지 않고 신님의 일을 해야 한다. 쓰러질 때까지 해낸다. - 인연과의 전쟁인 이상, 지면 죽음밖에 없다. 수비만으로는 안된다. -이것이 그의 신앙의 근본태세이다. 이 태도결정의 반면에는 과거의 악업의 자각과 참회가 명확해서 이것이 최선이라 믿는 인연납소의 길로, 곧장 그를 질주하게 한 것 같다. 어리석은 양떼 속을 맹호가 달려가는 듯한 기세로 가두에 서는 그는 가는 곳마다에서 자신의 지명수배 표찰에 부딪혔지만 살면서 되살아난 그의 얼굴 모습은 때의 흐름과 더불어 딴 사람처럼 변모해 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