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2. 밀항선

3. 유치장에서

4. 생장   

5. 나병(문둥병)

6. 병력과 전과력

7. 기이한 인연

8. 암흑의 수렁

 9. 악에 강한자

10. 악전침대

11. 첫참배

12. 교회의 사정

13. 수양과에서

14. 교회생활

15.경찰에 잡혀

16. 인연과의 전쟁

17.마디를 딛고

18. 포교소설립

19. 봄은 오다

20. 일진강풍

22.고국을 향해

23. 고성·충무교회

24.시험과 박해

25. 박해와 통합

26. 나심

27. 지바를 흠모

28. 에필로그

수양과에서

최재한의 신앙이 구제한줄기의 길에 차츰 들어가기 시작한 것은 수양과에 입학했을 무렵이었다고 생각된다. 그가 입신한 겡와(元和)분교회의 최상급교회는 가시와라(단원)시의 야기(팔목)대교회(1893년 설립)이다. 야기대교회는 설립당초부터 본부직할인데 직할교회마다 신자숙소가 본부 주변에 있어서 수양과생은 3개월간 숙소를 숙박도장으로 하여 교회본부 수양과에 다니게 되어 있다.

1947년 당시의 천리시는 단바이치정(丹波市町)이었을 무렵으로 구시대에 건립된 숙소의 건물은 오랜 전쟁기간을 거쳐 어느 것이나 노후화되고 파손된 것이 두드러지게 눈에 띄었다. 이해의 가을에는 [제국대학]의 명칭이나 [불경죄] 등이 폐지되고 급속한 민주화의 추진으로 날품팔이 노무자의 일당이 240엥으로 규정하고 요리음식점의 휴업은 다음해 2월까지 연기조치가 취해지는 등 극심한 생활난 시대였다. 전년에 이어 전후로는 가장 빈곤한 해였다고 할 수 있다.

수양과는 어버이신님께서 진좌하시고 오야사마가 존명으로 살고 계시는 [본고장 지방]에 어버이신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동시에 마음의 수양에 정진하고 신앙의 기쁨을 터득하기 위한 신자의 수양도장이다. 그 수양기관은 3개월로써 그 동안에 어버이신님이 의도하시는 바인[양기생활]의 세계를 건설하는 [용재]로 갱생하여, 새로운 인생으로 출발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 만 17세 이상으로써 신앙을 구하는 사람이면 남녀·노소·학력·직업·인종·국적의 여하를 불문하고 누구나 수양할 수가 있다.(천리교 사전에서)

최재한은 수양과 제 79기생으로써 그 해의 추계대제 때 지바에 돌아가 11월 1일부터 다음해 1월 말까지 야기(八木)대교회 숙소를 도장으로 하여 본부 수양과에 다니는 몸이 되었다.

그의 [마음작정]에 따르면 수양과 입학은 10월 1일로 정해 두었었는데 교회의 토지건물을 사들여 헌납하는 일 때문에 예정이 어긋나 한달이 늦은 것을 사과드리는 뜻으로 한국인 지원자 한사람을 데리고 갔다. 다리는 아직도 질질 끌 정도로 보행이 불편한 상태였으나 그는 그 괴로움을 참고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은 단바이치 근교를 포교하러 돌아다녔다. 만나는 사람마다, 접하는 사람마다 신앙을 권하지 않고는 베길 수 없는 격렬한 기우(氣宇)에 불탔던 것이다.

그 동안, 과연 최재한이 다운 에피소드를 소개해 본다.

같은 야기대교회의 신자로써 36세의 유부녀가 수양과 동기에 들어왔다. 만성의 중증 심장병으로 조금만 움직여도 가슴이 고동처 호흡이 곤란해진다는 상태인지라 종일토록 이부자리속에서 식사와 용변시 이외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재한이는 자신의 중병에 견주어 보고 [뭐야! 그까짓 걸 가지고....]라는 생각도 들었고 그정도 것으로 누워서 지내는 그 부인이 안타까웠다. 한마디 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에서
[- 여보시오 아주머니, 왜 모두들이 하는 것처럼 히노끼싱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습니까. 아주머니는 매일 이불에만 달라붙고 누워서 지내는데 이불이 심장병을 고쳐주기나 한답니까.]
하고 건네 보았다. 그 부인은 모처럼 수양과에 와 있으면서 저무나 새나 이부자리에만 들어 누워있고 수업에도 히노끼싱에도 나오려고 하지 않는다. 어딘가 달라붙는 대상을 잘못 알고 있는게 아닌가하고 급소를 찔러 본 것이었다. 수양과로써는 동기이고 나이도 동갑이다. 그 부인은 이불 깃에서 눈만 내놓고 힐끔 쳐다 보고는 대답도 없이 또 이불을 뒤집어 썼다. 붙잡아 볼 수 없는 형편이었다.

숙소의 지도자도 아니고 수양과 강사도 아니다. 하나의 수양과생으로 국적이 다른 그가 말을 건네 보았자 아무런 반응이 있을 리 없다. 이렇게 되면 더 조바심이 나서 서두르는 것이 그의 성품이다. 바위가 크면 클수록 부딪치는 물결도 높아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는 다음 공격을 시도했다.
[아주머니, 돈 가져 계시면 5백엥만 주시겠습니까?]
[? 돈은 가졌지만 무엇 때문에 내가 당신한테 돈을 주어야 합니까...]
[내가 필요해서가 아닙니다. 남들은 마음의 티끌을 털기 위해서  또 인연납소의 일단으로서 히노끼싱을 한다. 단식을 한다 하고 고생들 하고 있는데 당신은 신상이 있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히려 남들에게 폐를 끼치고 있지 않은가요. 그렇게 생각 안됩니까]
그 부인은 천장을 물끄러미 쳐다 보고 한참 생각하다가
[예, 그렇군요. 분명히 내 생활은 그래요.]
[그렇게 생각된다면 하다못해 돈이라도 내어서 사례의 표시를 하면 어떻습니까.]

그  부인은 흔쾌히 5백엥을 내 놓았다. 그는 곧장 미시마(三島)의 큰 거리에 나가서 그 돈으로 과자를 한 보따리 사들고 왔다, 당시 야기대교회 숙소에는 80여명의 남녀 수양과생들이 있었다. 5백엥어치의 과자는 전원에게 나누어졌다.

[이 과자는 저 아주머니가, 나는 누워만 지내고 여러분한테 폐만 끼치니 죄송하다고 생각하면서 나한테 부탁하시길래 사온 거요.]
최는 그렇게 말하면서 골고루 나누었다. 과자 대접을 받은 수양과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그 부인에게 인사를 했다. 그 때까지 웃음 한번 웃지 않던 부인의 입 언저리에 미소가 감돌았다.

[그것 보세요. 아주머니 아까부터 기분이 많이 좋아 졌지요. 남을 기쁘게 하면 스스로도 기뻐지는 겁니다. 마음이 기쁘면 심장도 기뻐집니다. 심장은 마음의 고장(臟)이니까요.]

그것을 계기로 부인은 남들에게 웃음을 보내게 되었고 매일 조금씩 일어나는 연습을 하여 이윽고 히노끼싱의 대열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나자 수료할 무렵에는 거의 회복된 정도가 되었다.

재한이는 입신하고부터 얼마 안되는 이 기간에 특히 교리를 공부한 것은 아니다. 그런 여유조차 없었다. 오직 어버이신님의 은총을 사람들에게 전할 뿐으로 지금가지의 죄업을 보상삼아 남을 돕는 정신일 뿐이었다. 입에 담는 말이라곤 구제받은 기쁨과 신체는 빌어받은 것이라는 근원에 바탕을 둔 실천에서 튀어나오는 활인(活人)의 교리가 되어 저절로 내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라 생각된다.

1948년 1월 27일, 재한이는 수양과를 수료했다. 그동안 토요일 일요일은 물론 신정 공휴일에도 전도에 돌아다녔으며 특히 재일동포 전도에 힘을 기울였다. 숙소에서 기거하는 자유시간에도 그는 방에서 편히 쉬는 일이 거의 없고 틈만 있으면 히노끼싱을 하거나 어느 정도 시간이 있을 때는 근교에 나가서 상대를 가리지 않고 신님의 이야기를 전했는데, 그 동안에 질질 끌고 다니던 다리는 어느 사이에 자유로움을 회복하고 있었다.

수양과 3개월은 어느새 지나가 버린다. 아침엔 새벽에 일어나고 밤엔 9시가 지나 소등하는 시간까지 자잔한 일과로 꽉 짜이고 있다. 겨우 생기는 여가에는 신변정리에 소요된다. 모처럼 과외(課外)의 일을 보려고 한다면 여간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고서는 정과(正課)수업에 말려들어가 버린다. 그러한 가운데 그는 부자유스런 몸을 끌면서 초인적으로 뛰어 다녔다. 1월 11일, 겡와분교회 춘계대제에는 최재한의 인도를 받은 한국인 신자 150여명이 참배하였고, 그가 수양과를 수료할 때 63명의 동포 신자와 함께 상급교회에 감사참배를 했다.

[수양과에 있는 동안 가장 감명이 깊었던 것은 입신하기까지 신의 존재 따위는 전혀 안중에 없었고 마음가짐 하나로 행불행이 온다는 그런 건 전혀 생각도 못했었지요, 그런데 천리교에서는 만물을 섭리하시는 天理王命이란 신님이 계셔서 그 신님의 생각에서 벗어나거나 의도에 어긋나는 마음을 쓰면 어떤 인연도 나타난다고 들었습니다. 내가 걸어온 과거를 돌이켜보고 마지막에 봉착한 그 때를 생각하면 그야말로 천리는 정직하며 나의 지금의 모습은 참으로 마음 그대로의 리의 나타남이라 자각되더군요.]

[나같은 사람은 몇 번 태어난다 해도 우마(牛馬)의 길을 되풀이 해야 된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금생에서 인연을 납소하는 방법이 없을까하고 수양과 선생님한테 물어 보았었지요. 그 답은 구제한줄기의 길을 걷는 것이 제일이며 남을 도우면 자기도 도와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은 맨 처음에 기무라 회장님으로부터도 들은 바 있어서 그렇다면 좋다. 이 세상에 살려지고 있는 동안에 할 수 있는 한 인연납소의 길을 걸어가자고 마음작정했던 겁니다.]

그런식으로 마음작정을 하는 사람은 수양과생 가운데는 많이 있다. 각자의 환경이나 입장에 따라 마음작정의 색도는 미묘하게 다르겠지만 [구제한줄기]를 표방(標榜)하는 천리교의 [용재]가 된 수양과 수료자는 거의가 이와 비슷한 결의를 가슴에 안고 본고장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수양과를 나오면 -][고향에 돌아가면 -]하는 말미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실은 이 말미가 문제인 것이다. 시간적 말미를 두면 그 틈으로 인간생각이 스며들 것이고 목전의 형편이 자리를 크게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그 말미가 길게 가면 모처럼의 마음작정이 풍화(風化)한다. 사람은 사는 장소나 환경에 감회되기 쉽다. 주체성이 여간 튼튼한 사람이 아니며는 환경의 변화에 순치(馴致)되어 일단 굳힌 결심도 언젠가는 대상을 잃고 방황하게 된다.

최재한은 주체성이 강하기로 드물 게 보는 인물이지만 그래도 어떻든 수양과를 마치고 나면 -하는 생각은 갖지 않았다. 그에게는 여기서 말하는 [말미]는 없었던 것이다. 듣고 과연 그렇구나 하고 납득이 가면 수양과 중이거나 아니거나 간에 말미를 두지 않고 즉시 행동으로 옮겼다. 그 답이 수료시에 63명의 동포를 상급교회에 인도하는 결과로 나타나 그 자신에게는 신생의 기쁨이 소생되었던 것이다. 

어느 감화에서 남기신 말